주절주절
역사의 강줄기는 언제나 사람의 욕망을 따라 흘러간다.
조선시대, 사색당파라 불리던 붉고 푸른 기세는
마치 정적 속 번개처럼 조정을 가르곤 했다.
동인과 서인, 남인과 북인으로 나뉜 그들의 싸움은
학문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썼지만,
실은 권력의 달콤함을 차지하기 위한 끝없는 줄다리기였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흐른 오늘.
우리는 여전히 그 유산 아래 살아가고 있다.
이름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남과 북,
영남과 호남,
노인과 청년,
남성과 여성,
진보와 보수,
좌와 우로 갈라선 정치판은
마치 거울을 들이민 듯 조선의 당파 싸움을 재현하고 있다.
논리는 감정에 가려지고, 대화는 증오에 삼켜진다.
SNS에서는 서로를 향한 돌멩이가 끊임없이 날아들고,
방송은 분노를 팔아 시청률을 산다.
하지만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녕, 이 싸움이 우리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고 있는가?
선거철마다 지도 위엔 파란색과 빨간색이 뒤엉켰고,
밥상머리엔 고향과 좌우 이야기가
곧 정치 성향을 가늠하는 열쇠가 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 특이한 것은 새로운 방향으로 틀어지고 있다.
한 민족, 한 세대 안에서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는 냉기가 도는 것이다.
2022년, 제20대 대선.
20대 남성은 과반이상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고,
20대 여성은 같은 비율로 이재명 후보를 선택했다.
같은 세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이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이제 지역이 아니라 성별이 갈라놓는 시대가 오는구나.’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 성별 분열은 단지 정치적 선택만이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젠더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서로를 향한 불신과 혐오가 깊어지고 있다.
남성은 역차별을 말하고,
여성은 구조적 차별을 외친다.
그 사이엔 공감 없는 침묵만이 흘러간다.
과거에는 외부의 적과 싸우던 민족이,
이제는 내부의 거울 앞에서 서로를 향해 칼을 들고 서 있는 셈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지역이라는 고정된 정체성이 약해진 자리를,
개인의 정체성과 감정이 대체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은 자신을 지켜줄 '우리'를 찾는다.
그 ‘우리’가 더 이상 지역이 아니라
성별, 세대, 혹은 이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경계선이 자꾸만 좁아진다는 것이다.
좁아질수록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배제하고 구별하려 한다.
하지만 질문해야 한다.
이렇게 가도 괜찮은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끝없이 나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는 다름 속에서 공존하는 기술이다.
같은 생각만을 추구하는 공동체는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성별, 세대, 지역을 초월해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서로의 분노를 부정하지 말되,
그 안의 상처를 보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정치는 분열을 이용해 승리하지만,
사회는 통합을 통해 성장한다.
이제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하나의 합창으로 엮을 시간이 되었다.
분열이 아닌 연대, 증오가 아닌 이해를 위해
학교는 더 섬세한 젠더 교육을,
미디어는 더 깊이 있는 대화를,
정치권은 진영 너머의 협치를 준비해야 한다.
강물은 갈라져도 결국 바다로 향한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서로 다른 언덕에서 물줄기를 이루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해와 공존이라는 바다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대화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사회통합은 먼 꿈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오늘의 발자국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