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일요일 아침,
호암미술관의 고요한 전시실.
그곳 한가운데,
한 폭의 거대한 그림 앞에 나는 멈춰 섰다.
겸재 정선,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정점이자 국보 제217호로 지정된 "금강전도".
그 앞에서 나는 단지 관람자가 아니라,
그림 속 산길을 걷는 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한지 위에 먹과 엷은 채색으로 펼쳐진 금강산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았다.
현실의 산이 구불구불 길을 따라 뻗어나가듯,
겸재의 붓끝은 금강의 능선을 손끝에서 되살려냈다.
그는 단지 본 것을 그린 것이 아니다. 보고, 느끼고, 그 안에서 호흡하며 그렸다.
그렇기에 이 그림은 산의 모양이 아니라 산의 마음이다.
나는 그 산을 따라 시선을 이동시켰다.
봉우리마다 이름이 달렸고, 길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산은 단단하고, 물은 부드럽게 흐르며, 하늘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다.
붓놀림은 살아 있고, 여백은 숨 쉬었다.
어디를 보아도 정선의 손길이 머물지 않은 자리는 없다.
그러나 그 손길은 결코 앞서 나가지 않고, 묵묵히 자연을 따라 걷는다.
미술관의 조명 아래, 그림은 더욱 중후한 빛을 발했다.
빛은 색을 뛰어넘고, 선은 공간을 넘어섰다.
나는 어느새 그림 속 바위에 앉아, 물소리를 듣는 듯했다.
겸재가 걸었던 그 산길을, 내 마음이 함께 걷고 있는 것이다.
이 금강전도는 단지 경치를 담은 풍경화가 아니다.
조선이라는 시간 속에서,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가장 깊은 시선을 담은 기록이다.
자연을 닮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가 되려는 겸손한 마음.
정선은 그것을 ‘진경眞景’이라 불렀고,
그 진심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진다.
산은 그대로지만, 우리는 변한다.
그림 속 금강은 오늘도 변함없지만,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계절처럼 흘러간다.
그것이 바로 명화가 주는 힘일 것이다.
세월을 넘어 나를 붙들고, 조용히 묻는다.
“지금, 너는 어디쯤 걷고 있는가?”
겸재의 산을 나와 다시 도시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마음 어딘가엔 아직도 그 산이 있다.
바위 틈 사이로 스미는 안개처럼, 고요히 머무는 사색의 산이.
그 산은 언젠가 또 나를 불러줄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붓결처럼, 내 안에 오래도록 살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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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
전시 기간 중 ▼아래와 같이 전시 작품이 교체됩니다.
관람에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1. 인왕제색도 (仁王霽色圖) : 4월 2일부터 5월 6일까지 전시
→ 풍악내산총람 (楓岳內山摠覽) : 5월 7일부터 6월 29일까지 전시
2. 여산초당 (廬山草堂) : 4월 2일부터 6월 1일까지 전시
→ 여산폭 (廬山瀑) : 6월 3일부터 6월 29일까지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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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Htssat2cd3w?si=rO5rQTaXWOv1VW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