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영원, 혹은 영원의 찰나

by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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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흰 벽 앞에서,

그의 작품은 마치 어린 시절의 꿈이 그대로 현실로 튀어나온 듯했다.

바로 제프 쿤스(1955~ )의 '풍선개(Balloon Dog)'.

영롱하게 빛나는 크롬 표면은 보는 각도에 따라 주변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반사하며,

시시각각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 매끄러운 곡선 속에서 나의 모습이 일그러지고 다시 온전해지기를 반복하며,

나는 마치 조형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1.jpg 제프 쿤스 '풍선개'



풍선으로 만든 강아지.

지극히 평범하고 일시적인,

어쩌면 하찮게 여겨질 수도 있는 오브제가 쿤스의 손을 거치자

거대한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이 되어 영원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그 모습은 마치 영원히 터지지 않는,

유년의 순수한 환상 같았다.


만질 수 없는 유리벽 너머로 반짝이는 그 풍선개를 보며,

나는 한때 풍선 하나에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그 시절의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고,

작은 풍선 하나에도 무한한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쿤스의 풍선개는 바로 그 순수한 시선과 무한한 가능성을 박제해 놓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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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화려하고 매끄러운 표면 뒤편에는 섬뜩한 경계심도 숨어 있었다.

완벽하게 가공된 크롬은 어떤 흠집도 용납하지 않을 듯한 차가운 완벽주의를 뿜어냈다.

마치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가장 완벽한 형태를 보는 듯했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상징하는 풍선이,

가장 비싸고 견고한 재료로 만들어졌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순수함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대 소비 사회의 끝없는 욕망,

물질주의의 정점,

그리고 예술마저도 상품화되는 현상을 비판하는

날카로운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했다.

그 빛나는 표면은 세상을 반사하는 동시에,

세상을 향해 묻고 있었다.


"무엇이 진정한 가치인가?"


2023년 마이애미에서 벌어진 '풍선개' 파손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찰나의 허망함을 느꼈다.

영원히 터지지 않을 것 같던 환상이 관객의 실수로 산산조각 났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 또한 찰나의 순간에 모든 것이 변할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산산조각난 제프 쿤스 '풍선개'



동시에, 그 파손된 조각들마저도 가치를 지닌다는 이야기는

예술의 본질적인 가치와 상업적 가치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과연 부서진 조각들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될까,

아니면 그저 비싼 쓰레기가 될까?


제프 쿤스의 '풍선개'는 나에게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선 경험을 선사했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순수한 동심과 현대 사회의 복잡한 욕망이 뒤엉킨 공간이었다.

빛나는 표면 속에 숨겨진 질문들은 나 자신과 세상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었다.

찰나의 아름다움이 영원히 박제된 듯 보이지만,

그 영원함 속에는 언제든 깨어질 수 있는 불안한 찰나가 공존하는,

모순적이면서도 찬란한 존재.

'풍선개'는 그렇게 나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부유할 것이다.



제프 쿤스 '토끼'.jpg 제프 쿤스 '토끼'


p.s 나는 제프쿤스와 인연이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한국의 작업실을 제안 했었다.

원하는 만큼의 크기, 개인 어씨 4명, 년1회 왕복 퍼스트클래스 항공권과 숙식 제공

그런데도 정중한 거절을 받았다. 지금 다시 요청하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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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h - Harpsichord concerto in F minor BWV 1056 - Henstra

https://youtu.be/QzOYMTT_xx8?si=HQyv52k1mWttfaF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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