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를 마주하면
마치 조선 시대로 잠시 산책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당》은 내게 특별한 울림을 주었다.
단원은 붓을 들고 역사를 기록한 사람이었다.
그의 그림 속에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숨결과 표정이,
당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서당"은 그 중에서도 가장 익살스럽고 정겹게 다가오는 풍경이다.
조선의 어느 시골 마을, 볕 좋은 오후.
한옥의 작은 마루 아래 아이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다.
글을 배우는 자리지만, 그들의 표정은 결코 엄숙하지 않다.
울상이 된 아이, 졸고 있는 아이, 엉덩이를 맞고 있는 아이까지.
어린 날의 우리 모습이 떠오른다.
누구나 지나온 ‘서당’ 같은 시간이 있다.
가르침은 늘 엄격했지만, 그 속에는 따스한 애정이 있었다.
그림 속 훈장의 얼굴엔 지혜로운 인내가 묻어난다.
매를 들고 있지만, 그 눈길은 매섭지 않다.
그는 아이들이 장차 사람다운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다.
가르침은 때로 고되지만, 한 사람을 키워내는 일은 언제나 그런 것이다.
단원은 이 장면을 통해 가르침의 본질,
그리고 그 안에 숨은 인간적인 정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이 그림을 바라보다 보면, 자연스레 웃음이 번진다.
그 웃음은 조롱이나 풍자가 아니다.
사람 사는 모습을 바라보는 깊은 이해와 따뜻한 연민에서 나오는 미소다.
김홍도의 풍속화는 그래서 아름답다.
그는 웃음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웃음 속에서 사람을 품는다.
《서당》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의 교실에도 말을 건넨다.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그저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전하는 일.
그림 속 아이들은 종이와 붓보다도,
훈장의 등과 표정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원의 그림 한 점은 조선의 하루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영원한 인간사를 담고 있다.
사람은 시대를 넘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웃으며 배우고, 혼나며 자란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사람이 된다.
《서당》을 바라본 그 날, 나는 잠시 나의 유년을 떠올렸다.
교실에서, 혹은 동네 공부방에서.
어설픈 글씨로 써 내려가던 첫 글자들과,
나무 책상 위에 떨어지던 햇살.
그 모든 기억이 단원의 그림 속 아이들과 겹쳐졌다.
그림은 정지해 있지만, 그 안의 삶은 살아 있다.
《서당》은 단순한 옛 풍경이 아니라,
오늘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가르침의 본질과 배움의 기쁨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김홍도는 조용히 속삭인다.
“삶이란, 그렇게 배워가는 거란다. 웃음과 눈물로.”
-------------------
** ‘장가가고’라는 그림으로 영국인 캐번디쉬(Cavendish)의 책 《조선과 신성한 백두산》에 실려 있다.
캐번디쉬는 1891년 조선을 방문하고 돌아갔는데 그의 책에는 김준근의 풍속화 26점이 실려 있다.
이 무렵 조선에 온 서양인들은 조선 여행을 기리기 위해 그림을 사곤 했는데
김준근은 이때 부산ㆍ원산 등 개항장에 살면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려 팔았다.
그 덕에 김홍도나 신윤복보다 유명하지 않았던 김준근의 그림이 나라 밖에서 더 많이 알려졌다.
김준근의 풍속화는 한국은 물론 독일ㆍ프랑스ㆍ영국ㆍ덴마크ㆍ네덜란드ㆍ오스트리아ㆍ러시아ㆍ미국 등
전 세계 20여 곳의 박물관에 1,500여 점이 남아 있다.
----------------
https://youtu.be/6iSRFRCC-LI?si=llq2iJxMJzCr2n3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