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어제 오전 뉴스다.
1991년도에 시작한 것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작년에는 미국 서부 최대 미술관에서
이중섭, 박수근의 위작을 전시해 망신을 당했다.
미술관을 거닐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그림이 정말 그 유명한 화가의 손에서 나온 것일까?
액자 속에 갇힌 작품들은 조용히 벽에 걸려 있지만,
그 뒤에는 때로 치열한 진위 논쟁이 숨어 있다.
위작(僞作). 단어 자체만으로도 뭔가 음습하고 어두운 느낌을 준다.
하지만 미술사를 들여다보면 위작 논란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작품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그 명성이 커질수록 위작의 유혹도 함께 커진다.
마치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중섭과 박수근의 2800여 점 위작 사건을 접했을 때
느꼈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2800점이라니.
두 화가가 평생 그린 작품보다 훨씬 많은 수의 가짜가
한 사람의 손에 있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더욱 놀라운 건 그 많은 가짜들이 오랫동안 진품으로 둔갑해 유통되었다는 점이다.
과연 누가 진짜를 구별해낼 수 있었을까?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사건은 또 다른 차원의 복잡함을 보여준다.
화가 본인이 "내 그림이 아니다"라고 부정하는데,
국가 기관은 "진품이다"라고 고집한다.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는 없다던 화가의 절규가 귓가에 맴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예술가도 때로는 자신의 작품을 잘못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이우환 화백의 경우는 정반대다.
위조범들이 "우리가 가짜로 그렸다"고
자백한 그림을 작가는 "내 작품이다"라고 주장한다.
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진실은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든 생각은,
위작 논란의 본질이 단순히 '진짜냐 가짜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속에는 예술의 가치를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돈, 명예, 권위, 그리고 때로는 감정까지.
미술품의 진위를 가리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적 감정 기법이 발달해도,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해도,
결국 마지막 판단은 사람의 몫이다.
그리고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실수할 수 있고, 편견을 가질 수 있으며,
때로는 이해관계에 휘둘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작품을 의심의 눈초리로 봐야 할까?
아니다.
중요한 건 위작의 존재를 인정하되,
그것 때문에 예술 자체의 가치까지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진품이든 위작이든,
그 작품이 주는 감동과 아름다움까지 가짜일 수는 없으니까.
위작은 예술계의 어두운 면이지만,
동시에 예술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결국 중요한 것은 작품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미국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Girls'시리즈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M-Maybe'.1965.
독일 루드비히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2008년 이 작품을 복제한 가짜 그림을 둘러싼 사기사건이 국내서 발생했다.
국내 한 기업인은 프랑스의 모 중개상으로부터
"리히텐슈타인의 진품이 반값에 나왔다.
작품이 실린 도록도 보여주겠다.
향후 투자수익을 보장한다"는 말에 속아 .
'M-Maybe' 진품을 흉내낸 위작 구입에 계약금(30억원)을
지불했다가 낭패를 당했다.
법정소송까지 갔으나 패소했다.
가짜 그림은 파리의 한 가구점에 걸려있던 복제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