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조선 후기 화단은 거장들의 그림자로 가득했다.
산수화에서는 정선의 유령이,
풍속화에서는 김홍도의 혼이 맴돌았다.
젊은 화가 변상벽(1730 - 1775)은 붓을 들 때마다
그 무거운 전통에 짓눌렸다.
자신의 산수화가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선배들의 위업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창작의 의지는 산산이 부서졌다.
그는 화폭을 접고 사랑방에 틀어박혔고,
유일한 위안은 길에서 주워 온 고양이 삼색이의 몸동작이었다.
삼색이는 창호지를 헤집고 다람쥐처럼 담장을 오르내렸다.
햇빛에 기대어 골골대는 모습,
깜짝 놀라 몸을 둥글게 말리는 순간,
상벽은 본능적으로 붓을 집어들었다.
처음엔 스케치 삼아 그렸다.
털 한 올 한 올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섬세함을 담기 위해 먹 농담을 수백 번 바꿨다.
고양이 눈동자의 깊이를 표현하려면 반쯤 닫힌 눈을 그릴 때
청색 안료를 은은하게 스며들게 해야 했다.
이 덕질(집착하는 대상에게 하는 행위)은 철저히 무욕(無慾)의 행위였다.
당시 조선에서 고양이 그림은 ‘잡화(雜畫)’로 천시받으며 주문도 없었기에,
그는 낮에는 생계를 위해 초상화를 그렸고 밤이면 오로지 삼색이의 모습을 화폭에 새겼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전기가 찾아왔다.
고양이 그림이 과거 합격의 길조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우야담』에 기록된 대로,
선비들이 시험장 가는 길에 고양이를 보면 합격한다는 속설이 퍼지면서,
그림으로라도 길운(吉運)을 빌고 싶어 하는 수요가 생겨난 것이다.
상벽의 작품은 특히 날카로웠다.
오랜 관찰에서 우러난 생동감이 살아있었고,
고양이의 교활함과 순수함이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해냈다.
그의 ‘묘작도(猫雀圖)’는 참새를 노리는 고양이의 긴장된 근육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감상자의 숨을 멎게 했고,
‘일묘도(日猫圖)’에는 해묘한 햇살 아래 늘어진 배를 보이는 고양이의 해학이 담겼다.
소문은 궁궐까지 퍼졌다. 영조가 “살아 움직이는 고양이를 그린 화가”를 불러들이라 명했고,
상벽은 어진(御眞) 제작에 참여하는 영예를 얻었다.
그의 붓끝에서 탄생한 영조의 초상은 위엄보다 인간적인 고뇌를 드러내 왕을 감동시켰다.
“네 고양이 그림에 깃든 정성이 왕의 혼백도 살아나게 하는구나”라는
칭찬과 함께 현감 직위가 내려졌다.
중인의 신분으로 관직을 받은 것은 당시로서는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진정한 예술은 욕심이 아닌 사랑에서 싹튼다”
변상벽의 이야기는 조선 화원(畫員) 사회에 전설로 남았다.
김득신의 야묘도추(野猫盜雛)가 농가의 고양이를 유머러스하게 담은 데 비해,
변상벽의 고양이는 생명의 떨림 그 자체였다.
그가 마침내 거둔 성공은 결코 계산된 선택이 아니라,
순수한 열정이 시간을 견뎌낸 승리였다.
오늘날 그의 작품을 보면 화폭 속 고양이의 눈빛이 말하는 것 같다.
“무너진 꿈의 잔해 위에서도 붓을 놓지 말라.
진실된 사랑은 반드시 세상을 움직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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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uCFITNbTwoo?si=16493zAZ1uiUe_P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