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처방전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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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 정신의학계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범불안장애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의사들이 의외의 처방을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의 미술관을 꼭 방문해 보세요."


이 간단한 권유 뒤에 숨은 과학적 근거를 파헤치며,

신경미학(neuroaesthetics)이라는 새롭게 떠오르는 분야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범불안장애(GAD)는

지나친 걱정이 일상의 발목을 잡는 질환이다.

미국 통계에 따르면 인구의 5%가 평생 한 번은 이 장애를 경험한다.


전통적인 치료법은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이나 부스피론 같은 항불안제,

또는 SSRI 계열 항우울제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들 약물은 졸음, 기억력 감퇴, 의존성 등의

부작용과 함께 근본적 치유보다 증상 완화에 그치는 한계가 있었다.


놀랍게도 단순히 색연필로 명화를 따라 그리거나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만으로도 불안 수치가

뚝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등장한다.



903762_203063_480.jpg 샤갈 '푸른 바이올리니스트'


이는 외부 자극이 차단된 상태에서

뇌가 명상할 때와 유사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가 감소하면서

정신적 이완이 촉진되는 현상이 확인되었다.


전쟁 트라우마를 겪는 군인,

재난 현장을 목격한 소방관,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에게 의료진이 적극 권하는

'미술 감상 처방'은 단순한 유행이 아닌 과학적 개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예술과 뇌 신경계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신경미학은 의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혁신적 분야다.



마티스의 '적색의 방.png 마티스의 적색의 방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미국을 강타한 이 학문은

한국에도 소개되어 『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 』 대중과 만나고 있다.


고흐의 격정적인 붓터치 속에서 내면의 불안이 공명하고,

모네의 물빛 연꽃 앞에서는 맥박이 저절로 느려지는 체험은

신경미학이 제안하는 감각적 치유의 실체다.


미술관 복도에 서서 한 점의 그림 앞에 숨죽였을 때,

나는 비로소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캔버스 위 색채들이 내 뇌신경과 교감하며 코르티솔의 물결을 잠재우는

그 순간이야말로 현대 의학이 발견한 가장 아름다운 처방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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