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오늘 아침 한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속도위반으로 수천억 대 자산가가
최대 1억 5천만 원의 벌금을 물었다는 소식이었다.
스위스는 과속 벌금을 개인의 소득과 재산,
생활방식을 기반으로 부과한다고 한다고 한다.
같은 위반행위라도 경제적 능력에 따라 벌금 액수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하며 우리 나라의 법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법의 불공정한 현실이 새삼 뼈아프게 다가왔다.
법 앞의 평등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 원칙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지하철 승차를 470번 아버지의 노인우대 카드로
무임승차한 30대 여성 직장인이 2,5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무려 운임의 30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한 달에 몇십만 원 버는 서민에게 이 금액은 삶을 뒤흔드는 거대한 벽이다.
물론 잘못은 했다.
반면 투자 사기나 주가 조작 등으로
수백, 수천억을 편취한 경제사범들은 어떤 처벌을 받는가?
몇 년의 실형과 솜방망이 같은 벌금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상자산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 전 테라폼랩스 대표가
형량이 많은 미국보다 한국으로 송환되기를 희망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법부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의 경제사범 최고 형량이 약 40년인 반면,
미국에서 받을 형량은 130년에 달하기 때문이다.
경제사범들에게 한국은 '피난처'나 다름없는 셈이다.
이러한 불공정의 뿌리는 깊다.
우선 정치권부터 살펴보자.
전과자도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는 현행 제도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공직은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자리다.
과거 법을 어긴 이력이 있는 사람이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자리에 앉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회개와 갱생의 기회는 주어져야 하지만,
공직만큼은 예외여야 한다.
국민을 대표하고 국가를 이끌어갈 사람에게는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제도 문제다.
현재의 지방의회는 의원들의 자질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지역 내에서 여야로 나뉘어 불필요한 정쟁만 반복하고 있다.
진정한 지역 발전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유럽의 선진국들처럼 무보수 명예직으로 활동하는 것을 고려해 볼 만하다.
그렇게 못하면 보좌진까지 거느리는 행태만이라도 없어져야 한다.
그 예산과 인력을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일자리를 창출하는 곳에
투입한다면 백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 강화다.
경제사범의 경우 피해액의 100배를 추징하고 법정 최고형을 선고해야 한다.
그들의 범죄로 인해 피해자들이 목숨까지 끊는 사회적 문제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법은 국민을 외면하고 있다.
2006년 대법원장도 '솜방망이 처벌' 비난을 받고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것"이라며
엄격한 잣대 적용을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스위스의 차등 벌금제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의 획일적 벌금제도는 부유층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이 되고,
서민들에게는 과도한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죄를 지어도 부자는 쉽게 벌금을 내고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서민은 그 벌금 때문에 삶이 무너진다.
이것이 과연 공정한가?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한다.
하지만 평등이란 단순히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잣대로 재는 것이다.
경제적 능력에 따른 형평성 있는 처벌 체계를 도입하는 것은
진정한 평등을 실현하는 길이다.
또한 경제사범에 대해서는 미국처럼 강력한 처벌을 통해
범죄의 대가가 확실히 따른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법은 시대와 함께 변해야 한다.
변화하는 사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법률은
오히려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서민들의 한탄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용기 있는 개정만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법 앞의 진정한 정의가 실현되는 그날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