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거짓말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7080 세대는 나이가 고무줄이었다.

사람을 처음 만나서 상대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형님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부모가 잘 몰라서 늦게 호적에 올렸다는 거짓말이 제일 많았다.

이런 나이 속임은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귀여운 거짓말이다.


직장에 있을 때, 한 직원이 경력으로 들어왔다.

그는 s대를 나왔고, 강남에 거주하며,

거기에다 오래된 차지만 벤츠를 끌고 출근했다.

직원들은 그가 재벌급 자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행동이 이상했던 그를

회사는 정밀조사를 한 모양이었다.

사실은 그는 허위 학력으로 입사했고,

원룸에 살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저 허영심 정도로 치부했지만,

6개월 동안 점점 더 정교해졌던 그의 거짓말들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그가 만들어낸 또 다른 인생이었다.



허위가 진실인 세상

KBS는 1993년도에 인사기록 전산화 과정에서 학력위조 적발로 큰 홍역을 치렀다.

의혹이 있는 100여명에 대한 전면 조사에 나서 고의적인 위조자를 색출했다.

당시 보직해임된 학력 위조자에는 서울 보도국장, 지역총국장도 포함돼 충격을 줬다.

KBS는 이후 추가로 위조자 59명을 찾아내 보직박탈·정직·감봉 등 징계 조치를 취했다.

2012년엔 이길영 KBS 이사장의 대학 학력 위조 의혹이 제기되었다.

공영방송인 kbs가 이지경이니 다른 곳은 얼마나 많은 사례가 있겠는가?


리플리 증후군.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의

주인공 톰 리플리에서 따온 이 용어는,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고 거짓된 삶을 진실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현상을 가리킨다.

의학적으로는 정신병리학적 진단명은 아니지만,

현대 사회에서 점점 더 자주 목격되는 현상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훨씬 많은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어 있다.



학력을 속인 연예인들, 직장인들,

자신의 학벌, 직업, 집안, 경제력 등 모든 걸 속이고 결혼한 여자,

낸시랭의 전남편 왕진진,

몇 년 전 전 국가대표 펜싱 선수인 남현희를 속인 전청조 등등

다 나열하기에 지면이 부족하다.



SNS가 일상이 된 시대,

리플리 증후군은 더욱 교묘하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인스타그램에서 만나는 화려한 일상들,

페이스북의 성공 스토리들,

링크드인의 찬란한 경력들.

이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진실일까? 어디서부터가 과장이고,

어디서부터가 완전한 허구일까? 경계는 점점 모호해진다.


문제는 이런 행동이 단순한 허영심에서 시작되어

점차 본인조차 속이는 단계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처음엔 남들에게 좋게 보이려는 마음에서 시작된 작은 거짓말이,

어느새 그 사람의 정체성 전체를 잠식해 버린다.


가짜 학력, 가짜 경력, 가짜 인맥, 가짜 재산...

하나의 거짓말을 유지하기 위해 열 개의 거짓말이 필요해지고,

결국 거짓말의 거미줄 속에서 본인조차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특히 한국 사회의 치열한 경쟁 문화는

리플리 증후군의 온상이 되기 쉽다.

학벌, 직장, 결혼, 자녀의 성적까지 모든 것이 비교와 평가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자신의 현실이 남보다 뒤떨어진다고 느끼는 순간 가면을 쓰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적 특성은 이런 현상을 더욱 부추긴다.

진실을 말했을 때 받게 될 시선과 평가가 두려워,

차라리 거짓말 속에서 안전함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리플리 증후군의 진짜 비극은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갈망하는 것은 인정과 사랑, 그리고 소속감이다.

하지만 가짜 모습으로 얻은 관심과 인정은 진짜가 될 수 없다.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그들을 더욱 고립시키고,

진짜 자신을 보여줄 용기를 앗아간다.

결국 그들은 자신이 만든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런 현상이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 전반에 불신의 문화가 확산되고,

진정성 있는 관계 형성이 어려워진다.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고, 남의 성공을 순수하게 축하하기보다는

"진짜일까?"라는 의구심부터 드는 사회가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완벽하지 않은 현실, 남보다 뒤떨어질 수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타인의 성과나 상황과 끊임없이 비교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속도와 기준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내적 힘을 길러야 한다.


사회적으로도 성공과 실패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문화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개별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누군가의 솔직한 고백을 비난하기보다는 지지해 주는 문화,

완벽하지 않은 모습도 받아들여주는 관용이 필요하다.



결국 리플리 증후군은 현대인의 외로움과 불안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진짜 모습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로에게 진짜 모습을 보여도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성공하지 못했어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거울 속의 거짓말은 언젠가는 깨지게 되어 있다.

그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진실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내보자.

그리고 주변의 누군가가 가면을 벗을 수 있도록 따뜻한 손을 내밀어보자.

그것이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현대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https://youtu.be/DxIBYgn2s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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