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꿈꾸는 자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부자를 꿈꾼다.

로또를 사고, 주식에 투자하며, 부동산을 알아본다.

하지만 이 시대엔 오히려 가난을 꿈꾸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그것도 아무 가난이 아닌, '확실한' 가난을 말이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고 싶어요."

이런 말이 농담이 아닌 시대가 왔다.

월 80만 원의 생계급여를 받으며 주 2회짜리

알바만 가끔 하는 A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말한다.


"소득이 늘어날수록 나라 지원금이 줄어들어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오히려 손해예요."


실제로 그의 삶은 풍족해 보인다.

서울 신축 영구임대주택에 당첨되어 월 임대료는 고작 5만 원.

시세 10억 가까이 하는 집에 사실상 공짜로 살고 있다.

병원비는 무료, 제철 과일을 사 먹으라는 용돈까지 따로 나온다.

문화생활 바우처로 수영장도 다니고,

남는 시간에는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티타임을 즐긴다.


"취직해서 수입이 생기면 지금 누리는 것들을

전부 포기해야 하니까 평생 이렇게 살 예정이에요."


기초생활수급자 주요 혜택


그렇다면 '애매하게 가난한' B씨의 삶은 어떨까.

중소기업에서 한 달에 200만 원을 번다.

기초생활수급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유 있는 것도 아닌 애매한 위치다.

국가 장학금을 받으려 해도 부모님 소득 때문에 탈락한다.

임대주택에 신청해 봐도 "직장을 그만둬야 들어갈 수 있다"는 말만 들을 뿐이다.


결국 썩다리 반지하에서 월세 70만 원을 내며 산다.

문화생활? 수영? 그럴 시간도 돈도 없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묻게 된다.

도대체 누가 진짜 가난한 것일까?


시스템은 명확한 경계선을 그어놓았다.

이 선 아래는 '가난한 자'로서 국가의 보호를 받고,

이 선 위는 '그럭저럭 사는 자'로서 스스로 알아서 살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 경계선 바로 위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고달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복지의 사각지대라고들 한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절벽'이다.

한 계단만 올라가면 모든 혜택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가파른 절벽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라리 그 아래에 머물기를 택한다.

위로 올라가는 순간 더 가파른 추락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연 건전한 사회인가.

노력하는 것이 벌이 되고,

성실함이 손해가 되는 구조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가난을 벗어나려는 의지를 꺾고,

오히려 가난에 안주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진짜 가난은 돈의 많고 적음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희망을 포기하고, 노력을 멈추며,

현재에만 안주하게 되는 마음의 가난이야말로 진짜 가난이다.

그런 의미에서 월 80만 원을 받으며 만족해하는 A씨와 월 200만 원을 벌며

고군분투하는 B씨 중 누가 더 가난한지는 명확해진다.


우리 사회가 정말 고민해야 할 것은 가난의 기준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난을 꿈꾸지 않게 만드는 방법이다.

노력하면 더 나은 삶이 보장되고,

성실하면 희망이 보이는 그런 사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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