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세기의 소송'이라 불리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1조 원대가 넘는 재산분할액이라는,
일반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숫자가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천문학적 금액에 경악하고,
법리적 쟁점을 분석하며,
기업 지배구조의 변화를 전망한다.
하지만 나는 이 소송을 바라보며 전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이 바로 노소영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평생을 함께한 남편의 배신이 온 세상에 공개되는 치욕.
그것도 미모가 화제가 될 정도의 상간녀와의 스캔들로 말이다.
민사소송에서 패소한 상간녀가 바로 20억이란 거액을 지불할 정도로
재력이 탄탄하다는 것보단 '먹고 떨어져라'식의 즉시 지급은
노소영에게 또 다른 칼날이었을 것이다.
대통령의 영애로 태어나 재벌 총수와 결혼했고,
SK그룹의 안주인으로서 대한민국의 모든 부러움을 샀던 그녀.
아무리 많은 재산분할을 받는다 한들,
그것이 무슨 위안이 될 수 있을까.
대법원은 전원합의체까지 열며 이 사건을 신중히 심리하고 있다.
특유재산 인정 여부, 노태우 비자금 300억 원의 유입 주장,
주식가액 계산 오류 등 복잡한 법률적 쟁점들이 산적해 있다.
1심에서는 66억 원이었던 재산분할액이 항소심에서
1조3천808억 원으로 20배나 뛰었다.
김옥숙 여사가 남긴 '선경 300억'이라는
메모 한 장과 약속어음 사진이 판결을 뒤바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법률적 공방과 천문학적 숫자 뒤에는
한 여인의 깊은 상처가 있다.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함께 걸어온 시간들,
그 세월이 법정의 차가운 증거자료로 제출되고,
돈으로 환산되는 과정은 얼마나 참혹한 일인가.
돈이 너무 없어도, 너무 많아도 인간은 불행해질 수 있다.
1조 원이 넘는 재산을 받는다 한들,
그것이 배신당한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까.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된 남편의 외도와 이혼 과정이,
어떤 금액으로도 보상될 수 있을까.
재산분할 소송에서 이긴다 해도,
그녀가 진정 원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온전한 가정이었을 것이다.
결국 돈으로는 사랑을 지킬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쌓아도,
그것이 진심 어린 한마디와 성실한 마음을 대신할 수는 없다.
세기의 이혼 소송이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통장 잔고가 아니라 진실한 관계 속에 있다는,
너무나 평범하지만 자주 잊혀지는 진리의 말이다.
대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이미 깨진 그릇은 다시 온전해질 수 없다.
우리는 이 소송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
돈의 위력이 아니라, 돈의 무력함을.
재산은 불릴 수 있어도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이 이 세기의 이혼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값비싼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