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하게 죽을 권리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우리는 이제 존엄사법 제정을 해야 한다.

산업 역군으로 나라의 경제를 떠받쳤던 베이비 부머들이

이제 노인이 되어 매년 수십만 명씩 늙어가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서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2022년 법개정이 발의 되었으나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24년에도 조력존엄사'(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의사, 종교계 등이 강한 반발을 하고 있다.


나는 오래전에 병든 부모를 모신 적이 있다.

평범한 직장인이자 두 아이를 둔 가장으로서 겪었던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생활 자체가 지옥이었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밤낮없이 이어지는 간병에 직장 생활은 위태로워졌고,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부모 노릇을 하지 못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더 큰 고통은 환자인 당사자였다.

극심한 고통으로 매일같이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며 연명해야 하는 상황.

어느 날 엄마는 내 손을 꽉 잡으시곤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들아, 너무 아파. 이젠 날 보내줘. 죽고 싶어. 제발."


그 간곡한 눈빛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법이 허락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엄마의 마지막 소원조차 들어드릴 수 없는 무력함 속에서,

나는 매일 밤 울었다.


이런 상황은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수많은 가정에서 비슷한 고통이 반복되고 있다.

나는 고려장을 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것이다.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면,

인간답게 죽을 권리도 있어야 하지 않은가.



실제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스위스에서 조력사망을 선택한 한국인이 최소 10명에 달하며,

약 300명이 스위스의 안락사 단체에 가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존엄사를 위해

먼 이국땅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 것이다.



그중 한 할아버지는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위스행을 택했다.

그분의 생전 인터뷰에는 이런 말이 담겨 있었다.


"내 의지대로 죽고 싶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낯선 땅에서 홀로 생을 마감하려 했을까.

우리 사회는 죽음을 금기시한다.


그러나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이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어떻게 맞이하느냐다.

회복 불가능한 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가

스스로 삶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이것이 바로 존엄사다.



물론 안락사 법제화에는 신중해야 한다.

생명의 가치를 경시하거나, 경제적 이유로 악용될 여지를 차단해야 한다.

엄격한 요건과 절차, 의료진의 판단,

환자 본인의 명확한 의사 확인 등 안전장치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이 논의 자체를 막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죽음 앞에서 고통받는 수많은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이제는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다.

살 권리만큼이나, 존엄하게 죽을 권리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반대하는 분들이,

죽음의 고통을 본인이 혹은 사랑하는 가족이

경험을 한다면 그런 반대를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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