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한국인들 사이에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유독 절을 찾는 일에는 거부감이 적다는 사실은
마치 잊혀졌던 무언가를 마음이 기억해내는 것 같다.
성당의 장엄함이나 교회의 열정보다,
절에선 고요한 공기 속에 스며드는 평안이 먼저 느껴진다.
이는 통계 숫자 이상으로 우리 마음속에 자리한 어떤 진실을 드러내는 것 같다.
무종교인이라 해도 삶에는 여전히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
현대 생활이 안겨주는 피로와 무기력 속에서,
어딘가에 계실지 모를 신보다는
내 안에 있는 뚜렷한 무언가를 붙잡고 싶어진다.
불교는 신을 섬기라 요구하기보다, 스스로를 돌아보라 말한다.
부처는 절대자가 아니라, 깨달음을 이룬 스승에 가깝다.
경전의 가르침도 기복을 바라는 신앙보다는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가르친다.
그것이 무종교인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찰에 서면 왠지 모를 안정감이 밀려온다.
대자대비의 마음이 스민 공간은 누구라도 편견 없이 품어주는 것 같다.
'자비'란 본디 친구를 대하듯 평등하게 보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니,
그곳에선 누구도 낯설지 않다.
은은한 향과 목탁 소리,
오래된 기둥과 담벼락까지 모두가 따뜻하게 맞이하는 느낌이다.
법구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자신이라는 괴물은 마음 속에 생긴 욕망과 화,
미혹으로 인해 상처를 입고,
또한 그것들을 떠올리지 않음으로써 조금씩 깨끗해질 수 있다.
더러워지는 것도, 깨끗해지는 것도 모두 너의 손에 달려있다."
신라시대의 고승 원효대사는 당나라로 유학가는 도중
날이 어두워져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차에
동굴에 들어가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목이 말라 웬 물이 담긴 바가지가 있어서
거기에 든 물을 들이키곤 달고 시원하다며 좋아했다.
그런데 다음날 날이 밝은 뒤 일어나 주변을 본 뒤 원효는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동굴의 정체는 파묘(破墓)된 무덤이었고,
그가 마셨던 건 해골 바가지에 담긴 썩은 물이었기 때문이다.
경악한 원효는 구토를 했는데,
직후 썩은 물도 목이 마를 때 모르고 마시니 달았다는 것에서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라는
깨달음을 얻고는 스스로 유학을 포기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이 말은 모든 해답이 결국 내 안에 있음을,
그리고 그 길은 오직 스스로 걸어가야 함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살아간다.
행복조차 남보다 더 갖고 있는지로 측정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마음의 불행은 그 어떤 신도 구원해 주지 못한다.
불교에서조차 부처가 아닌 오직 '나'만이 스스로를 평안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절을 찾는 무종교인들의 마음이 아닐까.
신에게 의지하기보다,
내면의 평화를 스스로 찾고자 하는 마음.
가끔은 삶이 지나치게 복잡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절로 발길을 돌린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고요히 네 안을 들여다보라 할 뿐이다.
산사에 앉아 안개 낀 산봉우리를 바라보면,
모든 게 힘들었던 날들도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위로가 찾아온다.
그것이 비록 종교적 신앙은 아니더라도,
우리 영혼이 필요로 하는 특별한 위안임에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