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나는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나약함이 신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과학이 없던 시절,

천둥번개조차 인간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 무력감 앞에서 인간은 자신보다 큰 존재를 상상해야만 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무너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평생을 신을 찾으며 살아왔다.

힘들 때는 하루에 수백 번도 그 이름을 불렀다.

믿지 않으면서도 신을 찾는 이 모순은 나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어릴 적에는 가족의 행복을 간절히 기도했고,

청년이 되어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안녕을 빌었으며,

중년에는 성공을 기도 했으며,

지금은 그저 평온한 하루를 달라고 속삭인다.



이것이 위선일까?

아니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일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성으로는 신의 부재를 받아들이면서도,

감정으로는 그 존재를 갈망하는 이중적 존재다.

마치 어둠 속에서 별을 바라보듯,

없다고 알면서도 그 빛에 의지하고 싶어한다.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성공도 실패도, 기쁨도 슬픔도 온전히 내 몫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그렇게 강하지 못하다.

때로는 내려놓고 싶고, 누군가에게 맡기고 싶어한다.

그래서 믿지 않으면서도 기도하는 것이다.



어쩌면 신을 찾는다는 것은 신 자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더 나은 가능성을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기도하는 순간,

우리는 잠시나마 일상의 무게에서 벗어나 더 큰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본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더 관대해지고, 조금 더 용감해진다.


결국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찾는 것은,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 불완전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것은 자기기만이 아니라 생존의 지혜다.

우리는 모순을 안고 살되,

그 모순마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소중한 조건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오늘도 믿지 않는 신에게 기도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도가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행위 자체가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20251009_085531.jpg 신윤복 ‘무녀신무(巫女神舞·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매거진의 이전글한국인의 부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