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스마트폰을 켜고 유튜브를 스크롤하다 보면 어느새
'감동적인 연예인 미담' 영상들이 추천 목록을 가득 채운다.
평소 조용했던 연예인이 갑자기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
팬들에게 깜짝 선물을 주는 장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따뜻한 순간들이 연일 쏟아진다.
하지만 이상하다. 왜 하필 지금, 왜 이렇게 많이, 왜 이런 식으로?
댓글창을 열어보면 의구심은 더욱 짙어진다.
"기획사 마케팅팀이 야근했나요?", "이미지 세탁용 영상 맞죠?",
"너무 티 나게 하지 마세요"라는 냉소적인 반응들이 줄을 잇는다.
선한 행동을 보고도 순수하게 감동하기보다는
먼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의심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민낯이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진실은 더욱 희귀해졌고,
누구든 쉽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조작된 이야기와
진짜 이야기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SNS 알고리즘은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것,
클릭하고 싶어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해서 끊임없이 공급한다.
감동적인 스토리일수록,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일수록 더 많이 퍼진다.
가짜뉴스의 문제는 단순히 거짓 정보가 유통된다는 것을 넘어선다.
더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모든 정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진짜 선행도, 진짜 뉴스도, 진짜 감동도 모두 '기획된 것'으로 여겨지는 냉소의 시대가 도래했다.
마치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으로 외치던 소년 때문에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도
아무도 믿지 않게 된 우화처럼 말이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클릭 수와 조회 수에 매몰되다 보니 자극적인 제목, 확인되지 않은 정보,
추측성 기사들이 범람한다.
'~카더라', '~것으로 추정된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식의 모호한 표현들로 포장된 기사들이 마치 확실한 사실인 양 유포된다.
독자들은 헤드라인만 보고 공유하고, 그렇게 진실은 더욱 왜곡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악용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불리한 뉴스가 나오면 "가짜뉴스"라고 선언하고,
유리한 내용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적극 활용한다.
국민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하기 어려워하고,
결국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에 빠지게 된다.
한국 사회는 가짜 뉴스로 인한 상처가 깊다.
2008년 광우병 가짜 뉴스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를 조장하며 대규모 촛불 시위를 촉발했다.
엄격한 검역 시스템이 존재했음에도, 과장되고 왜곡된 정보는 국민의 불안을 증폭시켰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조타수의 음주설, 의도적 인양 지연설 등 각종 유언비어가
난무하며 진실 규명을 방해하고 유가족들에게 2차 가해를 가했다.
비극적 사건 앞에서조차 가짜 뉴스는 책임과 원인을 왜곡시키며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켰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시기에는 과장되고 왜곡된 정보들이 정치적 혼란을 가중시켰고,
2017년 북한 핵실험 관련 가짜 뉴스는 안보 불안을 과도하게 부풀렸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은 가짜 뉴스의 전성기였다.
바이러스의 의도적 유포설, 백신 음모론, 5G 전파설 등 과학적 근거 없는 정보들이 범람했다.
이는 방역 정책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실제로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았다.
2022년에는 고위 공직자들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제기되며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사실 확인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도 전에 각종 추측과 단정이 난무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적 사고능력이다.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출처를 확인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정보를 검토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또한 언론사들도 속도보다는 정확성을, 자극성보다는
공정성을 추구하는 본래의 역할을 되찾아야 한다.
진실을 찾기 어려운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욱 신중하고 현명해져야 한다.
의심과 냉소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고,
건전한 회의주의와 맹목적 불신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