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으로
결혼한지 37년.
우리 부부는 거의 싸우지 않고 살아왔다.
아내가 바가지를 긁기는커녕 늘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 안에 깊이 새겨진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부모님의 잦은 다툼은 내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높아진 목소리, 무언가 깨지는 소리,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무거운 침묵.
나는 그때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막았지만,
부모의 언성은 어린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그 기억은 성인이 된 지금도 내게 하나의 신념을 심어주었다.
'싸움은 죄악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 후 어떤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려 애썼다.
의견 차이가 있어도 참았고, 화가 나면 산책을 나갔다.
아내도 나의 이런 모습을 이해하며 갈등을 키우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평화로운 가정을 꾸렸고,
주변에서는 금슬 좋은 부부라 칭찬했다.
그런데 최근 한 기사를 읽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추석 연휴, 반려견 문제로 시작된 사소한 부부싸움이
경찰 신고로 이어진 사건이었다.
그 현장에 있던 10살 딸아이는 엄마의 지시로
부모의 다툼을 휴대전화로 촬영해야 했다.
나는 핸드폰의 용도가 이런 상황에서도 쓰여 진다는 것이 황당했다.
아이 앞에서 벌어진 부모의 욕설과 위협적 행동은
단순한 부부싸움을 넘어 아동학대로 규정되고 있다.
기사를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어쩌면 그 아이는 지금의 내가 간직한 것과 같은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부모는 "애 앞에서 싸운 건 잘못했지만 그게 죄가 되냐"고 항변했지만,
법은 명확했다.
아동복지법은 아이의 정서적 학대를 엄격히 금지한다.
직접적인 신체 폭력이 아니더라도
아이의 정신건강과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모든 행위가 학대에 해당한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평생 싸움을 피해온 것이 단지 트라우마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어쩌면 아이들을 위한 본능적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부부가 함께 살다 보면 의견 충돌은 당연히 생긴다.
문제는 그 충돌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싸움 자체를 금기시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건강한 방식의 의견 교환은 관계를 성숙시킨다.
중요한 것은 그 방법이다.
부부싸움에도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첫째, 아이 앞에서는 절대 싸우지 않는다.
부모의 다툼은 아이에게 세상이 무너지는 공포로 다가온다.
둘째, 인격을 모독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한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셋째, 물리적 위협이나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넷째, 감정이 격해지면 잠시 거리를 두고 식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제가 해결되면 반드시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정은 아이가 세상을 배우는 첫 교실이다.
아이는 부모의 말과 행동을 통해 관계 맺는 법을 익힌다.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며 대화하면 아이도 그렇게 배운다.
반대로 우리가 고함치고 위협하면 아이는 그것이 문제 해결 방식이라 여긴다.
37년간의 결혼 생활을 돌아보며 나는 감사한다.
싸우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싸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다른 방법을 선택했던 우리 부부에게.
그리고 그 선택이 우리 아이들에게 평화로운 가정의 기억을 선물했다는 것에.
부부싸움의 진짜 피해자는 맞은 사람이 아니다.
그 옆에서 두려움에 떨며 지켜보는 아이가 진짜 피해자다.
부부의 말다툼 한 번이 아이의 정서에 남긴 상처는
법이 정한 처벌보다 훨씬 오래, 그리고 깊게 남는다.
만약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배우자와 갈등 중이라면,
잠시 멈추어 물어보자.
"우리 아이가 이 장면을 기억한다면?"
그 질문 하나가 당신의 가정을, 그리고 아이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