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주제, 죽음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화가들이 죽음을 소재로 작품을 창조하는 이유는

단순히 어둡고 무서운 주제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죽음은 인간 존재의 가장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경험이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철학적 성찰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또한 죽음의 불가피성과 평등성은 사회적 계급과 권력의 허상을 드러내며,

인간의 유한함 속에서 찾아야 할 진정한 가치를 탐구하게 한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죽음 인식

한스 홀바인의 《죽음의 춤》(1523-1525)은 중세 말기부터 유행했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전통을 계승한 대표작이다.

이 판화 연작에서 죽음은 해골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황제부터 농부까지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춤을 춘다.

홀바인은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 화가로,

정교한 세밀화 기법과 상징적 표현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죽음 앞에서의 인간 평등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당시 사회의 계급 의식에 도전했다.


한스 홀바인의 ‘죽음의 춤’ 연작, 1526.jpg 한스 홀바인의 ‘죽음의 춤’ 연작, 1526


같은 맥락에서 한스 발둥 그리엔의 《죽음과 소녀》(1517)는

젊은 여성과 해골로 형상화된 죽음이 포옹하는 장면을 그렸다.

그리엔은 알브레히트 뤼러의 제자로 활동한 독일 르네상스 화가로,

종교적 주제와 신화적 소재를 독특한 상징성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아름다움과 젊음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삶의 덧없음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347px-Hans_Baldung_-_Death_and_the_Maiden_-_WGA01190.jpg 한스 발둥의 ‘죽음과 소녀’


401px-Hans_Baldung_007b.jpg 'Death and the Maiden', 1509-1511년경


종교적 죽음의 의미

안토니오 다 코레지오의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1524)는

기독교 미술의 전통적 주제를 다룬다.

코레지오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후기의 화가로,

부드러운 명암법과 감성적 표현으로 바로크 미술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작품 속 예수의 창백한 시신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비탄에 찬 표정은

죽음의 슬픔을 넘어 부활의 희망을 암시한다.


333.jpg 코레지오, 십자가에서 내려짐, 1525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 1431-1506)의 《성 세바스티안의 순교》(1480)는

화살에 맞아 죽어가는 성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만테냐는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의 거장으로,

고전 고고학에 대한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 정밀한 표현력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 작품은 종교적 순교의 숭고함을 통해 죽음을 영광스러운 희생으로 승화시킨다.


안드레아 만테냐.jpg 성 세바스티안의 순교


낭만주의와 상징주의의 죽음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1818-1819)은

실제 해난사고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제리코는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로,

극적인 구성과 강렬한 감정 표현으로 고전주의에서 벗어난 새로운 미술 양식을 제시했다.

작품 속 뗏목 위의 생존자들과 시신들은 인간의 생존 의지와 죽음의 공포를 동시에 보여주며,

자연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108611067.1.jpg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호의 뗏목’, 1818∼1819년


아르놀트 뵈클린의 《그리스도를 애도하는 막달레나》(1868)은

상징주의 미술의 대표작이다.

스위스 태생의 뵈클린은 신화적이고 환상적인 주제로

19세기 말 유럽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애도하는 막달레나라는 주제는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에서도 많이 볼 수 있지만,

막달레나의 슬픔은 극적으로 과장되어 있고,

왼쪽에 누워있는 예수의 모습 또한 기존의 그림에서 볼 수 없던 표상을 보여준다.


000055.jpg 뵈클린, 그리스도를 애도하는 막달레나, 1868


현대적 죽음 인식

에드바르 뭉크의 《죽은 자의 침대》(1895)은

개인적 차원에서 죽음을 성찰한 작품이다.

뭉크는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화가로,

내적 불안과 실존적 고뇌를 독특한 화풍으로 표현했다.


여기서 환자는 더 이상 그림의 중심이 아니다.

그 대산 침대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 가족들의 손과 얼굴을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어둡고 가라앉은 배경 탓에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그리고 병상은 원근법으로 안쪽을 좁고 평평하게 그림으로써

관람자가 죽음의 순간을 목격하게 한다.

창백한 침대의 색조는, 벽면의 진한 밤색 그림자와 대조를 이룬다.

어두운 죽음의 그림자가 잠식하고 있는 오른편에 있는

가족들의 밝은 손과 얼굴이 검정색과 대조를 이루며 유난히 두드러진다.


25.jpg 뭉크, 죽은 자의 침대. 1895


88.jpg The Dead Mother and the Child1897


피터르 브뤼헐의 《죽음의 승리》(1562)는 중세 말기의 사회적 혼란을 반영한다.

브뤼헐은 플랑드르의 화가로, 농민들의 일상과 사회 풍속을 사실적으로 그려 '농민 화가'로 불렸다.

이 작품에서 해골들의 군대가 모든 계층을 휩쓸어가는 장면은 죽음의 무차별적 파괴력을 강조한다.


222222.jpg 죽음의 승리(1562년)


예술가들이 죽음을 그리는 것은 결국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죽음이라는 절대적 한계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재발견하며,

이러한 성찰이 예술로 승화될 때 시대를 초월한 감동을 전달한다.



https://youtu.be/DnnKEN-hV8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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