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해외펜팔

추억 속으로

by 제임스

1970년대 중학교 시절,

그 때 학생들에게는 두 가지 열풍이 있었다.

하나는 이소룡을 따라 하며 쌍절봉을 배우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해외펜팔이었다.



나 역시 두 가지 모두에 빠져있었는데,

공부는 뒷전이고 매일 쌍절봉만 돌리다가 엄마에게 혼이 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흥미진진했던 것은 바로 해외펜팔이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면 반 친구들이 둘러앉아 각자의 해외펜팔 친구 사진을

꺼내 놓고 한바탕 품평회가 벌어졌다.


"야, 내 펜팔친구 봐. 진짜 예쁘지?"

"어? 얘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


그런 대화들 속에서 나 역시 일본에 사는 어여쁜 소녀의 사진을 자랑스럽게 꺼내 보이곤 했다.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이 나를 으스대게 만들었다.


왼쪽이 펜팔친구인 마사미양이다. 오른쪽은 그녀의 동생ㅎㅎ


지금이야 인터넷의 발달로 해외에 있는 외국인과도 실시간으로 쉽게 대화할 수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전화나 우편만이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현실적으로 국제전화는 엄청난 비용(1980년대 초 일본은 1분당 약 1,000~1,500원,

미국은 1분당 2,000~3,000원 수준. 당시 짜장면 값이 300-500원) 때문에

엄두도 낼 수 없었고,

결국 편지가 우리의 전부였다.


약 35년이 흐른 2013년 어느날 요코하마,

요코하마아트뱅크 대표의 안내로 방문한 한 화가의 작업실에서

아주 우연히 그녀를 만났다.

그것은 내가 그녀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사미 테네바시야"


당시 신문이나 잡지에는 펜팔 관련 업체들의 광고가 자주 실렸고,

학교에서도 해외펜팔을 적극 장려했다.

펜팔 시스템은 이랬다.

외국인의 주소를 직접 알 수는 없었기에,

업체에서 모든 편지를 받아서 해외의 원하는 외국인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중학생의 짧은 영어실력을 총동원해서 여러 통의 편지를 썼지만,

실제 답장이 오는 것은 반도 안 되었다.

그래도 가끔 학교로 직접 배달되어 온 해외 편지를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나누어 주실 때면,

답장을 받은 친구들은 그야말로 반의 스타가 되었다.


사전을 뒤적이며, 여기저기 물어보고,

정 안 되는 표현은 선생님께도 여쭤보면서 영어편지를 쓰던 그 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재미로 했던 그 영어편지 쓰기가 학습효과는 정말 높았던 것 같다.

문법책으로 배우는 딱딱한 영어가 아니라,

내 마음을 전하고 싶은 간절함이 담긴 살아있는 영어였으니까.


세월이 흘러 지금도 그때 그 설렘과 떨림이 생각난다.

한 달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던 답장,

우표를 정성스럽게 붙이던 손길,

그리고 이소룡의 쌍절봉 못지않게 우리를 열광하게 했던 그 작은 국제우편봉투들.

그것들이 바로 우리 세대의 소중한 추억이다.



https://youtu.be/kp2tSKIqY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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