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의 산삼, 박대성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경주 남산 자락 배동,

신라 왕릉이 모인 이곳에 한국화의 거장 소산 박대성의 작업실이 있다.

작업실 벽을 가득 채운 가로 10미터가 넘는 대작 '불국설경'은

그가 50년간 천착해온 먹의 깊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천지창조 때 세상은 온통 검었습니다. 모든 색을 합쳐야 검은색이 나오지요."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그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생생한 힘이 넘친다.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난 박대성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세 살 때 전쟁통에 어머니를 여의었고, 이듬해 빨치산에게 아버지와 자신의 한쪽 팔까지 잃었다.


1.jpg 작품 앞에서 인터뷰하는 박대성 화백


그런 그에게 그림은 운명이었다.

여섯 살 무렵, 제삿날 병풍 뒤에 놓인 지필묵으로 장난치던 소년을 본 집안 어른들이

"그림에 소질이 있다"며 칭찬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땅바닥에 숯으로 그림을 그리다 위대한 화가가 된

신라시대 솔거의 이야기가 꼭 자신의 이야기 같았던 그는

정규 미술교육 없이 독학으로 전통 수묵화를 익혔다.


그의 독특한 배경에 대해 뉴욕에서 강연할 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청중 중 한 명이 "제도권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는데, 다른 점이 뭐냐?"고 물었다.

박대성은 잠시 생각하다 인삼 이야기로 답했다.


"인삼은 자연의 씨앗을 개량해 키우지만 아무리 공들여도 6년 이상 키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깊은 산중에 우연히 싹튼 산삼은 100년도 넘게 자라지요.

처음 함께 시작한 동료가 많았는데 지금 돌아보면 거의 없습니다.

남에게 영향받은 것으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스스로 자기 세계를 형성해야지요."


2.jpg 霜林 상림 (1979)


1979년 안개 자욱한 들녘을 그린 수묵 담채화 '상림'이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그의 이름이 화단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시커먼 먹을 들이부은 듯 힘이 넘치는 그의 수묵화는 기존 동양화에 없던

조형 감각으로 주목받았다.


3.jpg 천지인(天地人), 2011


독수리 시점으로 금강산을 내려다본 '천지인',

물고기가 되어 오목렌즈로 바라본 듯 금강산을 동그랗게 표현한 '금강화개' 등

그의 작품들은 한눈에 놀라움을 선사한다.

히말라야와 중동 사막을 여행하며 마주한 원시 그대로의 압도적 자연이

그의 독창적 조형 감각을 일깨웠다.


4.jpg 금강화개(金剛華開)>, 2020


1999년 경주로 이주한 후 그는 자연 풍광뿐 아니라 소박한 꽃과 풀,

아름다운 옛 유물을 서정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최근엔 옛것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있습니다.

'고미古美에 발을 딛고 현대를 산다'는 뜻으로 그림을 그리지요."


조선시대 지자개함을 그린 '고미' 시리즈에서 그는 부조화 속의 조화를 발견한다.

지난 20년간 매일 새벽 두 시간씩 정진한 서예를 통해 물체의 내면을 바라보는

망원렌즈를 갖게 되었다는 그는 "사람을 위한 그림, 누가 보아도 좋은 그림"을 추구한다.


적설 (1996).jpg 적설 (1996)


2015년 그는 자신의 작품 800여 점을 경주시에 기증하며

경주솔거미술관 건립에 힘을 보탰다.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이 생전 집무실에 그의 작품을 걸었고,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하버드대학교, 후드미술관을 순회하는 전시로

한국화의 위상을 세계에 알렸다.


"세월이라는 게 참 묘합디다. 노력한 만큼 보답을 하거든요."


한쪽 팔 없이도, 학맥도 인맥도 없이,

오직 먹과 붓 하나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낸 박대성.

그는 깊은 산중 100년 자란 산삼처럼,

한국화단에서 가장 깊고 오묘한 예술 세계를 일구어낸 진정한 거장이다.


피라미드 (1994).jpg 피라미드 (1994)


https://youtu.be/Zg-wR0Km3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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