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쿤스의 약 6,600억 원, 데미안 허스트의 5,076억 원 자산보다 더 많은
세계 최고의 부자 화가는 존 커린(John Currin/1962~)이다.
1조 8천억 원.
투자나 사업이 아닌, 오로지 그림만 팔아 벌어들인 금액이다.
포르노 초상화가라는 도발적인 별명으로 불리는 그는
어떻게 이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커린의 그림은 노골적이고 자극적이다.
하지만 표면 아래에는 르네상스 명작의 DNA가 숨 쉬고 있다.
1999년 작 '분홍색 나무'를 보자.
두 여성의 누드가 검은 배경 앞에서 묘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미소 짓고 있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고,
춤을 추는 듯 대화를 나누는 듯 애매한 순간이 포착되어 있다.
이 작품은 루카스 크라나흐의 '비너스'를 떠올리게 한다.
검은 배경, 모래 바닥, 붉은 금발, 백옥 같은 피부까지 닮은 요소가 많다.
크라나흐가 암흑 같은 배경으로 비너스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강조했다면,
커린은 같은 기법으로 현대의 왜곡된 아름다움을 풍자한다.
성형수술과 보정 기술로 만들어진 전형적 미의 기준.
커린은 그것을 과장해서 보여준다.
가슴은 비현실적으로 크게, 허리는 잘록하게,
얼굴은 크게 그려 뷰티 산업을 비튼다.
그의 그림이 고급스러우면서도 묘하게 불편한 이유다.
사실 명작을 재해석하는 것은 새로운 방법이 아니다.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도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에서 영감을 받았다.
하지만 커린은 여기에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더했다.
'마이너스'를 보면 르네상스풍 헤어스타일과 사과, 융단 같은 고전적 요소가
시스루 상의 같은 현대적 소재와 공존한다.
과거를 삼켜 현재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커린의 성공에는 타이밍도 한몫했다.
1990년대, 미술계는 "더 이상 새로운 회화는 없다"고 선언하며
설치미술에 열광하고 있었다.
회화의 시대는 지고 조각의 시대가 왔다고 믿었다.
바로 그때 커린이 등장했다.
과거의 거장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의 회화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데뷔 9년 만에 그의 작품 'nice and easy'는 135억 원에 낙찰되었다.
커린은 인간의 성욕을 부정하는 예술은 지루하다고 말한다.
1980년대 대학 시절, 지나치게 진지하고 강제적인 미술 수업에 반발하며
그는 본능에 가까운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벼운 핀업 걸 이미지였지만, 점차 하드코어 포르노로,
만화 같던 화풍은 르네상스 기법으로 진화했다.
정치적 메시지가 주류였던 1990년대에 그의 아카데믹한 접근은
오히려 컬렉터들의 관심을 끌었고, 데뷔 3년 만에 1억 원대 작품을 팔기 시작했다.
그에게 붓은 남근이고, 캔버스 속 여인은 욕망의 대상이다.
이런 성적 충동이 인간의 본질이며,
예술은 본질을 다루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고 그는 믿는다.
30년 넘는 작가 생활 동안 그는 쉬지 않고 작품을 만들고 전시했다.
63세가 된 지금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본질을 추구하고 아름다움을 풍자하며,
존 커린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