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처음 몬타나 앵글스(montana engels)의 작품을 마주했을 때,
나는 단순히 줄들이 겹쳐진 추상화라고 생각했다.
거칠고 불규칙한 선들이 캔버스를 가로지르며 만들어낸 패턴은
가까이서 보면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몇 걸음 뒤로 물러서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무질서해 보이던 줄들이 하나의 얼굴로 수렴하며,
그 안에서 감정과 영혼이 드러났다.
이것이 바로 벨기에 출신 아티스트 몬타나 앵글스가 창조해낸
'스트라이프(STRIPED)' 기법의 마법이었다.
몬타나 앵글스는 오직 수평선만으로 초상화를 그린다.
하지만 이 단순함 속에 숨겨진 복잡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녀는 물감에 모래 같은 입자를 섞어 질감을 만들고,
각 줄의 굵기와 간격, 빛과 그림자의 배치를 치밀하게 계산한다.
한 줄을 긋기 전에 이미 다음 줄과 이전 줄을 동시에 고려하는
이 정교한 사고 과정이 바로 그녀 작품의 핵심이다.
멀리서 보면 사실적인 초상화로,
가까이서 보면 추상적인 선의 조합으로 보이는 이중성은
보는 이의 거리와 시선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살아있는 예술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독창적인 기법이 탄생한 배경이다.
몬타나는 삶의 가장 힘든 시기에 이 작업을 시작했다.
고통과 혼란 속에서 그녀는 줄 하나하나를 그으며 자신을 재구성했고,
그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예술 언어를 발명했다.
수년간 전통적인 초상화 기법을 완벽하게 익힌 후에야
비로소 이 스트라이프 스타일을 개발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진정한 창조가 깊은 숙련과 용기 있는 실험의 만남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앤트워프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그녀는 파리, 런던, 암스테르담 등
유럽 주요 도시에서 전시를 열며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 언어로 정체성과 연결,
그리고 삶의 층위를 표현해왔다.
최근 고향 앤트워프에서 개최한 개인전 '라이프 라인즈(Life Lines)'는
모두 단 하나뿐인 수작업 작품들로 구성되어,
각각의 초상화가 얼마나 유일무이한 존재인지를 보여주었다.
몬타나 앵글스의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익숙한 것을 다시 보는 법을 배운다.
단순한 줄이 어떻게 복잡한 인간의 표정을 담아낼 수 있는지,
반복이 어떻게 다양성을 창조하는지,
그리고 제약이 어떻게 무한한 가능성으로 변모하는지를 목격한다.
그녀가 그은 수천 개의 줄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고통을 극복하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한 한 예술가의 생명선이다.
그 줄들이 모여 만드는 기적을 보며,
우리 역시 삶의 어려운 순간들이 결국 우리를 완성하는 소중한 선들임을 깨닫게 된다.
Debussy: Estampes, L. 100: III. Jardins sous la plu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