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제이디 차(Zadie Xa, 한국명 차유미)는
현대미술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한국계 작가다.
2025년 '현대미술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터너상(Turner Prize) 후보에
한국계 작가 최초로 선정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영예를 넘어,
한국적 서사와 정체성이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 무대에서 인정받은 역사적 순간이었다.
제이디 차의 작품 세계는 디아스포라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어린 시절 한국인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전통 설화와
민간 이야기들은 그의 예술적 자양분이 되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조상과의 연결,
그리고 복합적인 정체성에 대한 질문들이 작품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그는 회화, 조각, 설치,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한국의 전통 문화와 현대적 감각을 독창적으로 결합한다.
터너상 후보작인
'Moonlit Confessions Across Deep Sea Echoes: Your Ancestors Are Whales'는
제이디 차의 작품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샤르자 비엔날레 16에서 선보인 이 대규모 설치 작업은
베니토 마요르 발레호와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작품의 중심에는 650여 개의 황동 종으로 만든 샹들리에 형태의 구조물이 매달려 있다.
이는 한국 전통 무속의 '살풀이' 안무를 연상시키며,
조상의 기억을 울리는 영적 장치로 작동한다.
바다, 조개껍데기, 고래 같은 해양적 이미지와 한국 샤머니즘을 연결하며,
디아스포라의 정체성과 영적 세계를 탐구한다.
제이디 차는 마고 할미와 삼신 할미 같은 한국 설화 속 여성 신화를 작품의 근간으로 삼는다.
그는 샤머니즘적 사유를 통해 서구 중심적 예술 관념에 균열을 내며,
예술과 신화, 언어, 공동체 기억이 얽힌 통합적 형태를 창조한다.
터너상 심사위원단은 그의 작품이 "형식적·개념적 통합력이 뛰어나며,
다중 정체성과 영적 감각의 결합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2025년 9월부터 영국 브래드포드 카트라이트 홀 아트 갤러리에서 진행될 터너상 후보 전시는
제이디 차에게 더 넓은 관객과 만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는 경계에 선 예술가로서,
뿌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전통과 민간 신앙을 현대미술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그의 작업은,
문화와 국경을 넘어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