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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들을 향한 시선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한국 작가의 작품이 상영되었다.

하루 30만 명이 오가는 그곳에서 김아영은 전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LG 구겐하임 어워드의 첫 한국인 수상자이자,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에서 최고상인 골든 니카상을 받은 한국인 최초의 예술가.

그는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는 혁신적인 작가로 우뚝 섰다.


김아영(1979~ )을 화가나 작가라 부르기보다 '스토리텔러'라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그녀는 이야기에 미친 사람이다.

흥미로운 소재를 발견하면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현장에 직접 뛰어들며, 미학과 철학은 물론 근현대사와 지정학까지 섭렵한다.

고서적부터 웹소설, 웹툰까지 탐독하는 그의 작업 과정에서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시간은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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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표작 '딜리버리 댄서의 구'는 이러한 작가의 철학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배달 음식을 주문하며 문득 든 의문에서 작품은 시작되었다.

'누가 우리 집 앞에 음식을 두고 가는 걸까?'

수많은 배달 라이더가 존재하지만 거리에서 잘 보이지 않는

이 모순적 상황이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김아영은 실제 배달 라이더로 일하는 여성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고,

바이크 뒷좌석에 앉아 함께 배달에 나섰다.

그녀가 배달앱 화면에서 발견한 것은 실시간으로 누적되는 배달 경로였다.

수많은 선과 꼭짓점이 복잡하게 엉킨 지도는

시공간의 미로에 갇힌 주인공을 떠올리게 했다.

더 빨리, 더 많이 배달을 완료해도 절대 최종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는 이들.

이것이 바로 디지털 플랫폼 뒤에서 필수적 노동을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고스트 워커'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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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의 작품은 AI, 3D 애니메이션, 디지털 렌더링 등

최신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하지만 그녀는 기술 그 자체보다 스토리텔링에 집중한다.

AI는 창작을 돕는 훌륭한 도구일 수 있지만,

창작에 필요한 깊은 사유까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녀의 입장이다.

그녀는 기술의 등장으로 소외된 사람들,

기술에 종속된 현대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3개월간의 치열한 심사 끝에 국제 심사단은 김아영을 선택했다.

'기술과 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독창적인 관점을 제시한 예술가'라는

평가와 함께. 미래 도시를 상상하면서도 노동과 일상의 문제를 놓치지 않는 그의 시선,

허황된 상상이 아닌 현실에 발을 딛고 선 탄탄한 세계관이 세계를 움직였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향한 김아영의 집요한 관찰과 광기 어린 취재가

예술과 기술의 새로운 대화를 열어가고 있다.


김아영 작가의 작품 영상

https://youtu.be/KIQZMYWF46Q

'뉴 애니메이션 아트' 부문에 출품된 '딜리버리 댄서의 구'는 배달 플랫폼인 '딜리버리 댄서'에서 최상위 능력자인 '고스트 댄서'로 일하고 있는 에른스트 모가 또 다른 가능 세계(실제 세계가 아니라 가능한 모든 세계)에서 자신과 완벽하게 닮은 사람과 만난 이야기를 털어놓는 내용의 25분짜리 영상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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