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 그리는 초상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나무판 위에서 춤추는 불꽃.

그 뜨거운 궤적이 식으면 한 사람의 얼굴이 나타난다.

마치 오래된 세피아 사진처럼, 혹은 영혼의 깊이를 담은 초상화처럼.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 알렉스 피터 이도코(Alex Peter Idoko, 1992-)

만들어내는 작품 앞에서 사람들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것이 정말 불로 그린 그림이란 말인가.



라고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도코는 중학교 시절 처음 그림에 눈을 떴다.

처음엔 연필과 파스텔로 초상화를 그리며 기술을 갈고닦았다.

하지만 그는 더 강렬한 무언가를 원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파이로그래피(pyrography),

즉 불을 이용한 목판화였다.

회계학을 전공했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독학으로 자신만의 기법을 개발해나갔다.


이도코의 작업 과정은 경이롭다.

먼저 나무판 위에 연필로 대략적인 스케치를 한다.

그리고 토치를 들고 불의 세기를 조절하며 천천히 나무를 그을려간다.

불꽃과 나무판 사이의 거리, 손의 속도, 불의 온도에 따라 색의 농담이 달라진다.

어두운 부분은 더 오래 불을 대고,

밝은 부분은 샌드페이퍼로 태운 부분을 깎아낸다.

때로는 면도날을 사용해 섬세한 디테일을 조각한다.

피부의 모공 하나, 눈가의 주름 하나까지 표현하기 위해

그는 몇 달씩 한 작품과 씨름한다.


2.jpg 알렉스 피터 이도코 , 뿌리 공명 , 2024 불, 종이, 아크릴 캔버스


그가 스스로 명명한 '파이로-퓨저니즘(Pyro-fusionism)'은

단순한 목판화를 넘어선 기법이다.

최근에는 나무판뿐 아니라 캔버스에도 불을 사용하며,

아크릴 물감과 불을 결합하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캔버스가 타지 않도록 불의 압력을 조절하는 것은

엄청난 기술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나무라는 자연과 협업한다고 말한다.


이도코의 작품은 기술적 완성도만으로도 주목받을 만하지만,

그의 진정한 힘은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에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흑인의 이야기를 다시 쓰고, 재정의하고, 편집한다"고 말한다.

아프리카와 전 세계 흑인들이 직면한 도전과 이슈를 작품에 담아내며,

동시에 긍정적인 롤모델을 제시하려 한다.

한 작품에서는 젊은 남성이 불의에 맞서 열정적으로 외치며 다른 청년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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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작품에서는 한 여성이 깊은 고뇌에 잠겨 있다.

말할 것인가, 행동할 것인가.

"이 작품들은 공적 영역에서 목소리를 낼 힘이 없는

모든 이들에게 목소리를 빌려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의 말이다.

예술을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본 그는,

가슴으로 표현하면 사람들은 언제나 그 언어를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자수성가한 30대 초반의 작가는 이제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라고스의 오멘카 갤러리부터 뉴욕의 모니커 아트 페어,

런던의 커먼스레드 전시회, 마이애미의 컨텍스트 아트 페어까지

그의 작품은 세계를 순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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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는 베누에 청년 초이스 어워드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불은 파괴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창조의 도구이기도 하다.

알렉스 피터 이도코는 불의 양면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얼굴과 이야기를 창조해낸다.

그의 손끝에서 불은 더 이상 위험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부여하는 붓이 된다.

그리고 그 불꽃이 식은 자리에는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들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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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3NJo6Haiof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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