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을 지우는 화가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대부분의 화가가 색을 더할 때, 스테판 바르네프는 색을 지운다.

'니크 비콘드'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이 젊은 예술가의 도구는 붓이 아니라 표백제다.


2023년 4월, 그는 오래된 티셔츠를 보며 뭔가 창의적인 작업을 해보기로 했다.

검은 천 위에 표백제를 떨어뜨렸을 때,

예상과 달리 하얀색이 아닌 선명한 오렌지색이 나타났다.

표백제가 천의 염료를 분해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화학적 반응이었다.

검은 천 아래 숨어 있던 짙은 오렌지 염료가 드러난 것이다.



건축을 공부하며 고딕 서예에 매료되었던 그에게,

이 오렌지와 검정의 대비는 완벽한 캔버스였다.

전통적인 서예가 먹과 종이를 사용한다면,

바르네프는 표백제와 검은 스웨트셔츠를 선택했다.

흐르는 듯한 서예 선과 해골, 자연, 건축의 요소들이 그의 손끝에서 융합되었다.


그의 첫 바이럴 영상은 가슴 전체를 뒤덮는 해골과 서예가 어우러진 디자인이었다.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디지털 시대에 비디지털 예술가로서의 성공은 역설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예술의 과정에 매료되었다.

20시간 이상 걸리는 세밀한 작업, 젤 형태의 표백제를 정교하게 조절하며

만들어내는 선 하나하나가 모두 영상에 담겼다.



작품이 완성되면 그는 과산화수소 용액으로 옷을 처리해 염소 반응을 멈춘다.

천이 더 이상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섬세한 마무리 작업이다.

그의 작품을 입는 사람들은 저온에서 세탁하고 자연 건조해야 한다.

손으로 만든 예술품이기에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니크 비콘드'라는 이름은 2016년 한 노부인의 앵무새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고향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그녀가 자신의 두 마리 앵무새 니크와 비콘드의 이름을 써달라 부탁했고,

그는 그 이름들을 자신의 예명으로 삼았다.



현재 그는 69만 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거느리며 표백제 아트 온라인 강좌를 개설했다.

평범한 옷을 착용 가능한 예술작품으로 변화시키는 그의 철학은 단순하다.

예술은 갤러리의 벽에만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함께 숨 쉬어야 한다는 것.


표백제 한 병으로 시작된 그의 여정은 묻는다.

진정한 예술가란 누구인가?

어쩌면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평범한 것에서

비범함을 발견해내는 사람이 아닐까.

검은 스웨트셔츠와 표백제.

그 단순한 조합에서 탄생하는 오렌지빛 선들은,

예술의 본질이 재료가 아니라 상상력에 있음을 증명한다.




쇼팽 녹턴 2번 E flat Major Op.9-2

https://youtu.be/610PsNeZl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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