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생관 최북의 세계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자신의 이름 북(北) 자를 반으로 쪼개어 칠칠(七七)이라는 자를 만들고,

'붓을 놀려 먹고 산다'는 의미로 호생관(毫生館)이라는 호를 지었던 화가가 있다.

조선 후기, 중인 출신으로 평생을 직업화가로 살다간 최북(1712~1786?).

그는 자신이 예언이라도 한 듯 칠칠사십구(7×7=49)의 나이에

눈보라 치는 겨울밤 술에 취해 눈 속에 쓰러져 얼어 죽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는 75세까지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남긴 기행과 광기의 일화들, 그리고 손가락으로 그린 지두화까지,

최북의 작품 세계는 그 자체로 조선 후기 한 예술가의 치열한 생존기록이다.


풍설야귀인도


최북의 대표작 「풍설야귀인도」는 그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낸 그림이다.

눈보라 치는 깊은 밤, 험준한 산세 아래 나무들은 바람에 꺾일 듯 휘어져 있고,

허물어질 듯한 울타리 안 초가집 앞에는 검은 개가 짖어대고 있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과 어린 동자가 혹독한 추위를 뚫고 집을 향해 걸어간다.

이 작품은 붓이 아닌 손가락으로 그린 지두화(指頭畵)다.

-손가락과 손톱에 먹물을 묻혀서 그린 것-

거친 필선과 손가락으로 찍어낸 형상들은 화폭에 생생한 냉기를 불어넣는다.

마치 화가 자신이 평생 걸어온 차가운 세파의 길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그리고 정말로 최북은 이 그림 속 나그네처럼 눈보라 치는 밤을 헤매다 삶을 마감했다.


20251018_133244.jpg 공산무인도


「공산무인도」는 또 다른 걸작이다.

'빈 산에 사람은 없는데 물은 흐르고 꽃은 피네'라는 소동파의 시와 함께

그려진 이 작품은 텅 빈 초가 정자와 제멋대로 뻗은 거친 나무 두 그루,

그리고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계곡을 담묵과 농묵으로 대비시켜 표현했다.


미술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최북의 최고작으로 꼽는다.

그가 산수화를 워낙 잘 그려 '최산수'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공산무인도」야말로 그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최북의 그림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진경산수에 대한 그의 신념 때문이다.

그는 "무릇 중국 사람들의 풍속이 다르고 조선 사람들의 풍속이 다른 것처럼,

산수의 형세도 중국과 조선이 서로 다른데,

사람들은 모두 중국 산세의 형세를 그린 그림만을 좋아하고 숭상하면서

조선의 산수를 그린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고까지 이야기하는데,

조선 사람은 마땅히 조선의 산수를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


20251018_133553.jpg 금강산표훈사도


3.jpg 한강조어도


실제로 그는 금강산의 「표훈사도」와 「금강산전도」, 단양의 「도담도」, 한강의 「한강조어도」 등

조선 산천을 직접 찾아다니며 그렸다.

정선의 진경산수화풍과 심사정의 남종화풍을 모두 소화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냈다.


그의 성격은 괴팍했다.

고관이 그림을 강요하자 "남이 나를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눈이 나를 저버린다"며

자신의 한쪽 눈을 찔러 애꾸가 되었고, 금강산 구룡연에서 술에 취해

"천하 명인 최북은 천하 명산에서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외치며 몸을 던지기도 했다.

선비가 거금을 가져와 산수화를 부탁했는데 물을 그리지 않자 항의하자

"그림 밖이 물이야"라고 소리쳤다는 일화도 전한다.

하루에 대여섯 되씩 술을 마시며 살았던 그는 화가이자 시인이었고,

광초를 잘 쓰는 서예가이기도 했다.


최북 초상, 조선후기 화가 이한철(1808~?)작품


최북의 일생은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신분의 한계로 점철되었다.

중인 출신의 직업화가로서 자신의 재능에 대한 정당한 대접을 받을 수 없었던

그는 창작자로서의 자부심과 주문자의 의도를 따라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평생 괴로워했다.

그러나 그의 붓끝에서는 조선 후기 산수화의 새로운 경지가 펼쳐졌다.

거칠고 파격적이면서도 소박하고 시정 어린 분위기,

그것이 바로 호생관 최북이 남긴 예술 세계다.

오늘날 무주 최북미술관에는 그의 영인본 6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붓으로 먹고 산다는 것의 의미를, 최북은 그림으로 말하고 있다.


333.jpg 최북, 일출



https://youtu.be/ByUaFxxw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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