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그린 화가, 유영국

by 제임스

유영국(劉永國, 1916년~2002년)은 대한민국의 1세대 서양화가이다.

그는 한국 모더니즘과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힌다.

1916년 경북 울진의 깊은 산골에서 태어난 유영국은 산과 함께 자랐다.

그의 눈에 처음 비친 세상은 산의 능선이었고,

계절마다 변하는 산의 색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산에서 세상의 색과 순결을 배웠고,

평생 산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다.


국제갤러리-유영국_Work_1977_.jpg 〈Work〉1977 Oil on canvas 32 x 41 cm


1935년 도쿄 문화학원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한 그는 처음부터 추상을 시도했다.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고 싶었다.

사물의 모양이 아닌 그 안의 감정과 본질, 자연의 정수를 담아내고 싶었다.

1938년 일본의 대표적 전위미술가 단체전인 자유미술가협회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젊은 추상화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았다.


1-horz.jpg 유영국의 산


그러나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그는 약 10년간 작품 제작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의 추상화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는 붓을 내려놓아야 했다.

어부가 되어 바다로 나갔고, 양조장을 운영하며 막걸리를 만들어 팔았다.

예술가로서의 꿈을 접고 생계를 위해 살아가야 했던 그 시간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아내의 사랑이었다.

"이젠 당신이 그리고 싶은 걸 그려요." 아내의 격려로

그는 40살이 되어서야 다시 붓을 들었다.


4f19f849-cbc6-48e1-9319-a6c39f057b9c.jpg Work,1992 ,Oil on canvas


1955년부터 서울에서 본격적인 미술 활동을 시작하며 모던아트협회를 결성했고,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서 다시 화단에 섰다.

하지만 여전히 그림은 쉽게 팔리지 않았다.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아내는 끝까지 그를 믿고 헌신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점, 선, 면, 형, 색 등 기본적인 조형요소가

주인공이 되어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고향 울진의 깊은 바다, 장엄한 산맥, 맑은 계곡, 붉은 태양이 연상되지만

사실적인 자연의 모습은 아니다.

추상화된 조형의 힘으로 오히려 더 직접적으로 자연의 본질에 다가간다.


20251127_162100.jpg Work,1994 ,Oil on canvas


60이 넘어서야 그의 그림은 처음으로 팔렸다.

그날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제야 사람들이 당신의 산을 보네요."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가. 얼마나 많은 밤을 함께 견뎌왔던가.


2002년 타계할 때까지 그는 매일 규칙적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일에만

몰두하며 평생 400여 점의 아름다운 유화작품을 남겼다.

그는 평생 산을 그렸다.

고단했지만 아름다웠던 그의 인생,

그의 그림은 결국 사랑으로 완성된 예술이었다.

산처럼 묵묵히, 산처럼 변함없이, 산처럼 영원히 그곳에 서 있는 작품들처럼.


20251127_162255.jpg




https://youtu.be/E3SuXIizbmU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세기를 관통하는 화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