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를 관통하는 화가들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그림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거울이며,

당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긴 역사의 증언이다.

화가의 붓끝에서 탄생한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꿈꾸었으며,

어떤 가치를 소중히 여겼는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고대: 영원을 향한 염원

이집트 무덤 벽화 앞에 서면 시간이 멈춘 듯한 기이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5천 년 전 그려진 그림들이 여전히 선명한 색채를 유지한 채,

죽은 자의 영혼이 저승으로 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네바문의 무덤에 그려진 '나일강의 사냥'은 이집트 벽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파피루스 숲에서 새를 사냥하는 귀족의 모습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사후세계에서도 영원히 누릴 풍요를 상징한다.

이집트인들에게 그림은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법이었고, 영생을 위한 필수적인 의식이었다.


Tomb_of_Nebamun.jpg 늪지에서 사냥하는 네바문, 기원전 1350년 무렵, 프레스코


이집트 벽화의 독특한 표현 방식을 보면 그들의 세계관이 드러난다.

얼굴은 옆모습으로, 눈은 정면으로, 상체는 정면으로, 다리는 옆모습으로 그려진 인물들.

이것은 미숙함이 아니라 철학이었다.

그들은 대상의 가장 특징적인 면들을 모두 담으려 했다.

'죽은 자의 서'에 그려진 심판 장면에서도 이러한 원칙이 관철된다.


ii19vm5ekisl8s6311el7u2gq1.png 사자의 서(死者- 書,)는 고대 이집트 시대 관 속의 미라와 함께 매장한 사후세계(死後世界)에 관한 안내서이다


아누비스 신이 죽은 자의 심장을 깃털과 저울질하는 장면은

영혼의 운명을 결정하는 엄숙한 순간을 기록한다.

파라오는 언제나 신하들보다 크게 그려졌고,

시간의 흐름은 공간적 배치로 표현되었다.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진리를 기록하려 한 것이다.


반면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현세의 아름다움에 주목했다.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된 '알렉산더 모자이크'는 고대 회화의 놀라운 수준을 보여준다.


20251127_163520.jpg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과 맞서 싸우는 알렉산더 대왕의 모습은 극적인 순간을 생생하게 포착했고,

수백만 개의 작은 돌조각으로 만들어진 이 모자이크는 마치 그림처럼 섬세하다.

같은 폼페이에서 나온 '정원의 프레스코화'는 자연을 사랑한 로마인들의 감성을 담았다.

새들이 노래하고 과일나무가 자라는 정원의 환영은 좁은 방을 넓은 자연으로 확장시킨다.

그리스-로마 문명은 인간의 이성과 육체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다.

그들의 예술은 관찰과 비례, 조화를 중시했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이러한 사실주의적 전통은 천년 가까이 잊혀지게 된다.

중세가 도래하면서 예술의 목적과 방향은 완전히 달라졌다.


중세: 신의 영광을 위한 빛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금박, 경직된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는 성인들의 모습.

중세의 이콘과 프레스코화를 마주하면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는다.

비잔틴 제국의 '라벤나 모자이크'에 나타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테오도라 황후의 모습은

중세 초기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황금빛 배경 속에서 정면을 응시하는 황제와 황후는 신성한 권위의 화신이며,

평면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은 지상의 권력이 천상의 질서를 반영함을 드러낸다.

조토 디 본도네가 14세기 초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에 그린 프레스코화는

중세 미술의 정점이자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작품이다.


20251127_164701.jpg 동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와 그의 부인인 황후 테오도라〈사진 왼쪽에서 세번째〉가 있다


다운로드.jpg 조토 디 본도네, 스크로베니 성당 프레스코화


중세는 신 중심의 시대였다.

교회는 사회의 중심이었고, 예술의 유일한 목적은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화가들은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채 수도원의 벽과 성경 사본을 장식했다.

그들의 그림에서 원근법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성한 인물들은 황금빛 배경 속에서 현실을 초월한 존재로 표현되었다.

크기는 중요도를 나타냈고, 예수와 성모는 다른 인물들보다 훨씬 크게 그려졌다.


하지만 조토의 그림에는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그의 인물들은 비록 여전히 성스럽지만, 무게감을 지닌 육체를 가지고 있고,

슬픔과 기쁨 같은 인간적 감정을 드러낸다.

'애도'에서 죽은 예수를 안고 우는 성모의 모습은

신학적 도상이면서 동시에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비통함을 담고 있다.

중세의 끝자락에서 인간성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20251127_165700.jpg 조토, 애도(Lamentation), c.1303-05, fresco, 200x185cm, 파도바 스크로베니경당


르네상스: 인간의 재발견

15세기 이탈리아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을 보고 있으면,

중세의 어둠에서 막 깨어난 시대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작품은 단순히 종교적 장면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인간의 표정, 감정, 심리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열두 제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르네상스가 추구한 휴머니즘의 정수를 발견한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는 또 다른 방식으로 시대정신을 담았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려진 이 장면에서 신과 아담의 손가락이 거의 닿을듯 말듯한 순간은,

인간이 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고귀한 존재임을 웅변한다.


다운로드 (1).jpg 아담의 창조


르네상스는 '재탄생'을 의미한다.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 그 자체에 주목하기 시작한 시대였다.

다빈치는 해부학을 연구하며 인체의 완벽한 비례를 탐구했고,

원근법을 통해 3차원의 세계를 2차원 캔버스에 담아냈다.

그의 그림은 과학이자 예술이었고,

그 시대가 얼마나 지적 호기심으로 들끓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17세기 바로크: 격동의 시대를 담다

렘브란트의 '야경'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어둠 속에서 터져 나오는 빛, 극적인 명암 대비는 마치 무대 위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바로크 시대는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이 충돌하던 격동의 시기였다.


La_ronda_de_noche,_por_Rembrandt_van_Rijn.jpg 렘브란트, 야경, 1642


카톨릭 교회는 신자들의 감성을 자극할 강렬한 예술을 원했고,

화가들은 빛과 그림자의 극적인 대비로 응답했다.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의 소명'은 이러한 바로크의 정신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어두운 술집에 한 줄기 빛이 들어와 세리 마태오를 비추는 장면은,

신의 은총이 어떻게 평범한 일상을 성스러운 순간으로 변화시키는지 보여준다.


book0510001.jpg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의 소명'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우리는 17세기 네덜란드 시민사회의 자부심을 읽는다.

귀족이 아닌 평범한 시민 민병대를 당당하게 그려낸 것은,

상업으로 번영을 이룬 네덜란드 공화국의 자신감을 반영한다.

그의 작품은 시대가 요구한 웅장함과 드라마를 담으면서도,

인간의 내면을 깊이 있게 탐구했다.


18세기: 이성과 우아함의 시대

18세기는 계몽주의와 혁명의 시대였다.

프랑스 궁정의 화려함과 부르주아 계급의 부상,

그리고 혁명의 열기가 공존했던 모순의 시기.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는 로코코 시대의 경쾌함과 퇴폐를 동시에 담고 있다.

숲속에서 그네를 타는 귀부인의 치마 속을 몰래 엿보는 젊은이의 모습은

구체제 귀족사회의 감각적이고 경박한 분위기를 포착한다.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색채와 유희적인 구도는 혁명 전야의 안일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20251127_170849.jpg 프라고나르, 〈그네〉, 1767


하지만 세기 후반으로 가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은 프랑스 혁명의 비극을 고전적 형식으로 담아낸다.

욕조에서 암살당한 혁명가 마라의 시신을 그린 이 작품은

정치적 선전물이면서 동시에 숭고한 예술이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명료함과 절제된 표현은 혁명 이념이 추구한 이성과 덕성을 반영한다.

로코코의 장식적 화려함에서 신고전주의의 엄숙함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양식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겪은 거대한 지각변동이었다.


33.jpg 자크 루이 다비드 <마라의 죽음> 1793


19세기 인상주의: 변화하는 세계를 포착하다

모네가 그린 '인상, 해돋이'는 미술사의 흐름을 바꾼 혁명적 작품이었다.


222.jpg 1873'인상주의'라는 말을 탄생시킨 클로드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


산업혁명으로 증기기관차가 달리고, 도시가 급속히 팽창하던 시대.

사진기의 발명은 화가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이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는 근대 도시의 새로운 여가문화를 포착한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야외 무도장에서

춤추고 대화하는 파리 시민들의 모습은 활기차고 경쾌하다.


666.jpg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1876


인상주의 화가들은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와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들은 순간의 빛, 변화하는 대기, 찰나의 인상을 포착하려 했다.

모네의 흐릿한 붓터치와 밝은 색채는 당시 비평가들에게 조롱받았지만,

그것은 빠르게 변화하는 근대 세계의 리듬을 정확히 담아낸 것이었다.

기차역, 카페, 공원 같은 도시의 일상적 풍경이 캔버스의 주인공이 된 것도 이 시대의 특징이다.


20251127_171743.jpg 클로드 모네, '봄의 들판', 1887


20세기: 파편화된 세계

피카소의 '게르니카'만큼 20세기의 비극을 강렬하게 표현한 작품이 또 있을까.

스페인 내전 중 폭격당한 도시를 그린 이 거대한 벽화는

전쟁의 참상을 왜곡되고 파편화된 형태로 보여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냉전을 겪은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시대였다.


2570.jpg 피카소의 '게르니카' 1937


999.jpg 한국에서의 학살>파블로 피카소, 1951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는 다른 각도에서 현대인의 고독을 드러낸다.

다리 위에서 귀를 막고 비명 지르는 형상은 산업화된 세계에서

개인이 느끼는 실존적 불안을 시각화한다.

물결치는 하늘과 뒤틀린 풍경은 내면의 공포가 외부 세계로 투사된 듯하다.

이전 세기의 낙관적 진보주의는 산산이 부서졌다.


555.jpg (왼쪽부터)4가지 버전‘절규’중 작품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1893년작.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소장품이다, 뭉크미술관 소장 1910년작 유화 '절규'


입체파,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등 20세기 미술의 다양한 경향들은

모두 파편화되고 불안한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전통적 원근법과 재현의 규칙이 깨진 것은 단순한 미학적 실험이 아니었다.

그것은 확실성이 사라진 세계,

절대적 진리가 의심받는 시대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캔버스에 새겨진 시간

돌이켜보면,

위대한 화가들은 모두 자신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동시대인들이 느끼는 불안과 희망,

갈등과 열망을 예민하게 감지했고,

그것을 형태와 색채로 번역해냈다.


그래서 우리는 수백 년 전에 그려진 그림 앞에 서서도 깊은 공감을 느낀다.

시대는 달라도 인간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술관을 걷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훗날 어떤 그림으로 기억될까.

디지털 화면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우리의 고독과 연결의 역설을,

기후위기와 인공지능 시대의 불확실성을, 미래의 화가는 어떤 붓터치로 담아낼까.


결국 예술은 질문이다.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리고 미래의 관람객에게 던지는 질문.

화가의 캔버스는 그 질문을 담는 그릇이며,

우리는 그 앞에 서서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는 시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그것이 바로 시대를 담은 그림들이 지닌 영원한 힘이다.



https://youtu.be/0fcWNpuVNZ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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