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뉴욕의 엘리트 금융인이었던 마크 테토(Mark Tetto)가 서울의 고즈넉한 한옥,
'평행제'의 주인이 되기까지의 여정은 한 편의 잘 짜인 드라마와 같다.
아이비리그 프린스턴과 와튼 스쿨을 거친 그가 왜
한국의 전통 문화에 이토록 깊이 빠져들었을까.
그 이유는 평행제에서 그가 수집하고 아껴온 문화재들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그에게 있어 문화재는 단순한 골동품이 아닌,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생생한 대화창이다.
평행제 안을 채우고 있는 문화재들은 마크 테토의 깊은 한국 문화 이해도를 반영한다.
그의 수집 목록은 한 시대를 넘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또 일상 용품부터 예술품까지 그 범위가 놀랍도록 넓다.
특히 그가 집에 삼국시대 수막새만 30개 이상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애정이 얼마나 집요하고 진실한지 보여준다.
수막새는 지붕의 기와 끝을 마무리하는 장식으로,
그 문양에는 당시 사람들의 미의식과 염원이 담겨 있다.
수많은 수막새를 소장한다는 것은 그가 삼국시대의 소박하면서도
해학적인 미소와 정교한 장인의 숨결을 자신의 공간에 고스란히 들이고 싶었음을 의미한다.
그의 한옥을 장식하는 물품 중에는 백동 화로와 무쇠 조각 같은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공예품이 눈에 띈다. 화로는 단순히 불을 담는 도구가 아니라,
은은하게 빛나는 백동의 재질과 장인의 섬세한 세공을 통해 조선 사대부의 기품을 상징한다.
무쇠 조각 역시 투박한 듯 견고한 형태로 한국적 장인 정신의 강인함을 대변한다.
또한 관료 초상화는 조선 시대 인물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한 귀중한 자료이며,
장생문(長生文) 약함이나 인장함과 같은 소소한 생활 용품은
당대 사람들의 삶의 태도와 염원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장생문(거북, 학, 소나무 등 십장생)이 새겨진 약함은 건강과 장수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담고 있으며, 이는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 소망과 연결된다.
그의 수집품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가야 토기와 조선시대 책장,
그리고 백자 광구병(廣口甁) 같은 도자기들이다.
가야 토기의 자유분방하고 원시적인 아름다움은 한국 고대 미술의 매력을 발산하며,
조선시대 책장은 선비 정신의 정갈함과 지혜를 상징한다.
백자 광구병은 화려함을 배제한 채 절제된 순백의 미를 보여주며,
조선 후기 실용적이면서도 우아한 미감을 대표한다.
이러한 수집품 하나하나가 마크 테토에게는 한국의 역사 교과서이자 미학 해설서인 셈이다.
하지만 마크 테토의 가치는 단순한 수집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미국으로 반출되었던 수막새 세트와 일본으로 건너갔던
고려 시대 유물을 사비를 들여 되찾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는 그의 한국 사랑이 소유를 넘어선 책임감과 역사 보존에 대한 헌신으로 발현되었음을 보여준다.
"자신은 한국과 같은 운명이다,"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한국에서 살겠다"는 그의 다짐처럼,
마크 테토는 이미 한국 문화의 진정한 일원이 되었다.
그는 평행제라는 공간 속에서 수많은 문화재와 호흡하며,
한국의 지나간 아름다움을 지키고 미래 세대에게 전달하는
'문화재 지킴이'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그의 찬란한 수집과 기증 행위는 이방인의 눈을 통해 한국의 문화유산이 지닌 가치와 의미를
우리에게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감동적인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