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실패

재미난 이야기

by 제임스

1914년 8월, 런던의 한 신문에 이상한 구인 광고가 실렸다.


"위험한 여정. 적은 임금. 혹한. 몇 달간의 완전한 어둠.

끊임없는 위험. 귀환은 불확실. 성공 시 명예와 영광."


설명도 없는 담백한 문구였지만, 5,000명이 넘는 남자들이 지원했다.

광고를 낸 사람은 어니스트 섀클턴.

그는 이미 두 번이나 남극 탐험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그 사이 노르웨이의 아문센이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했다.

섀클턴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 순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엔 더 대담한 목표를 세웠다.

남극 대륙 횡단.



5,000명 중 선발된 27명의 정예 대원을 태운 인듀어런스호가 1915년 1월 남극 해역에 진입했다.

'인내'라는 뜻을 담은 배 이름처럼, 그들에게는 정말로 인내가 필요했다.

상륙을 시도하던 배는 거대한 해빙에 갇혀버렸다.

10개월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남극해를 떠돌았다.

남극 대륙은 코앞이었지만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다.


봄이 되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해빙이 움직이며 선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배는 심각하게 파손되었고, 섀클턴은 마침내 명령을 내렸다.

"배를 버려라." 대원들은 필요한 생필품만 챙겨 근처 유빙으로 이동했다.

이때 그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챙긴 것은 카메라와 필름이었다.

사진작가는 실수로 카메라를 바다에 빠뜨렸고, 망설임 없이 얼음물 속으로 뛰어들어 건져냈다.

투자자들과 사진 저작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탐험 비용을 받았기 때문이다.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서도 기록을 남기는 것이 그들에게는 중요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까지 그들의 생생한 모습을 사진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이 상륙한 해빙은 점점 남극 대륙에서 멀어졌다.

언제 얼음이 갈라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물 위를 떠다닌 지 460일 만에 탐험대는 엘리펀트 섬에 상륙했다.

하지만 그곳은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였고,

섬 곳곳에는 펭귄 배설물이 가득했다.

이대로라면 구조는 불가능했다.


섀클턴은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사우스 조지아 섬으로 가서 구조대를 불러오겠다."

문제는 그곳이 1,300km나 떨어져 있었고, 그들에게는 조각배 한 척밖에 없었다.

5명의 지원자가 나섰고,

섀클턴을 포함한 6명이 육분의와 크로노미터에 의지한 채 망망대해로 떠났다.

섀클턴은 남은 대원들에게 말했다.


"한 달 안에 구조대가 오지 않으면 섬을 탈출하라."


사우스 조지아 섬으로 가는 바닷길은 죽음 그 자체였다.

방향을 알려줄 섬도 없었고, 바다는 엄청나게 사나웠다.

파도가 하루에 수십 번씩 배를 뒤집으려 했다.

그들은 16일간 악착같이 버티며 항해했고, 마침내 사우스 조지아 섬에 도착했다.


그러나 여기서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그들이 상륙한 킹 하콘 만은 사람들이 사는 포경 기지가 있는 스트롬네스 만과 정반대편이었다.

다시 배를 타고 섬을 돌아가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스트롬네스까지는 33km였지만, 그 사이에는 첩첩산중의 얼음 산맥이 가로막고 있었다.

이 구간은 현지인들조차 이용하지 못하는 험준한 길이었다.


Cap 2026-02-15 06-14-40.jpg 구조대를 찾아 떠난 섀클턴


체력이 소진된 3명의 대원을 킹 하콘에 남겨두고,

섀클턴은 2명의 대원과 함께 산맥을 가로지르기로 했다.

수직 절벽이 가득한 산봉우리를 지나,

그들은 이윽고 스트롬네스를 앞둔 마지막 산 정상에 도달했다.

대원들은 이미 체력이 바닥나 있었다.

나중에 그들은 "그냥 누워서 죽고 싶었다. 눈을 감으면 그대로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감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섀클턴은 딱 5분만 휴식을 허락하고 계속 이동시켰다. 절대 잠들지 않게 했다.

마지막 산 정상 아래에는 포경 기지가 보였다.

하지만 산을 내려가는 경사는 매우 가팔랐고,

능선을 우회할 체력도 식량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때 섀클턴은 기상천외한 방법을 제안했다.


"이 경사를 썰매 타고 내려가자."


대원들은 미친 짓이라며 만류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각자의 로프를 깔개 삼아 일렬로 서로의 몸을 묶었다.

섀클턴이 가장 앞에 섰다.

인간 썰매는 엄청난 속도로 산을 내려갔다.

모두가 사망할 수도 있는 위험한 시도였지만,

썰매는 안전하게 산 아래에 도착했다. 포

경 기지의 사람들은 그들이 걸어온 길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구조선을 구하는 데는 약 4개월이 걸렸다.

한겨울의 강추위와 물자 조달 문제 때문이었다.

결국 섀클턴은 칠레 정부로부터 증기선을 빌려 엘리펀트 섬으로 떠났다.

한편 엘리펀트 섬에 남은 대원들은 섀클턴 일행의 상황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장이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으로 악착같이 생존해 나갔다.

바다표범과 펭귄을 잡아 식량으로 삼았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조개를 캤다.

남은 동물의 뼈까지 삶아 먹었다.

한 대원은 동상에 시달리다 결국 왼쪽 발의 모든 발가락을 잘라내야 했다.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응급처치를 한 이유는 발가락이 썩기 시작하면

다리 전체까지 썩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대장 프랭크 와일드는 날씨가 좋은 날마다

"오늘은 대장님이 구조대를 이끌고 올지도 모른다. 미리 짐을 챙겨라"고 명령했다.

그들이 가진 것은 오직 믿음뿐이었다.


1916년 8월 30일, 약 4개월을 기다린 끝에 구조선이 도착했다.

섬에 있던 대원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인듀어런스호의 27명 대원들은 전원 생존하여 무사히 본국으로 귀환했다.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다.

20251108_01160116000001_L00.jpg 인듀어런스호를 배경으로 탐험대 28명이 함께 찍은 사진. 전원이 생존했다.


인듀어런스호의 탐험을 보면,

신이 작정하고 몰살시키려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극한의 환경이었다.

그러나 섀클턴은 초인적인 판단력과 리더십으로 모든 대원의 목숨을 지켰다.

배가 침몰하는 과정에서 섀클턴과 간부들은 질 좋은 침낭을 선원들에게 양보하고

자신들은 일부러 질 나쁜 침낭을 선택했다.

섀클턴 본인도 식량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비스킷을 고생하는 대원들에게 나눠줬다.


본국으로 돌아온 섀클턴과 탐험대는 하루아침에 런던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광고문구에 있던 '명예와 영광'이 현실이 되었다.

탐험기를 책으로 발간하고 강연을 다니며 찬란한 미래가 펼쳐질 것 같았다.

하지만 섀클턴은 경제난에 시달렸다.

비료 공장에서 일하는 등 도시 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안락한 도시보다 혹독한 오지가 더 좋았다.


1921년, 섀클턴은 다시 한번 남극 탐험을 준비했다.

새로운 배 퀘스트호를 이끌고 사우스 조지아로 출발하며 네 번째 남극 항해를 시작했다.

그러나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섀클턴은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남극을 처음 탐험하기 이전부터 지병이 있었던 그에게,

세 번의 남극 탐험으로 인한 건강 악화가 누적된 결과였다.

그는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했다는 아내의 뜻에 따라

그의 유해는 사우스 조지아 섬에 안장되었다.



역사는 섀클턴의 탐험을 '위대한 실패'라고 부른다.

남극 횡단이라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

탐험 시작부터 해빙에 막혔고,

남극 본 대륙에는 상륙해 보지도 못했다.

배는 난파되었고, 횡단은커녕 첫걸음도 떼지 못하고 귀환했다.


그러나 '실패' 앞에 '위대한'이라는 단어가 붙은 이유가 있다.

엄청난 절망 속에서도 섀클턴은 자신의 목적보다 대원들의 안전을 더 생각했다.

한 명의 사망자 없이 본국으로 무사히 복귀시켰다.

그의 놀라운 리더십은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탐험가들의 정신을 이끌고 있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도 섀클턴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

히말라야 칸첸중가 등정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도 주인공이 탄 우주선의 이름을 인듀어런스호로 정했고,

배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파도 장면도 이 탐험에서 영감을 받았다.


섀클턴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생존 그 이상이었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어도,

가장 중요한 것을 지켜낸다면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라는 것.

죽음의 문턱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았던 섀클턴과 인듀어런스호의 탐험.

그것이 바로 위대한 실패가 우리에게 남긴 진짜 성공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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