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이야기
1961년 5월 4일,
해군 비행사이자 외과의사인 빅터 알론조 프래더 주니어 중령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그는 동료 말콤 로스와 함께 거대한 플라스틱 풍선을 타고
멕시코만 상공 11만3740피트,
약 34킬로미터 높이까지 올라갔다.
이는 유인 풍선 비행 세계 기록이었다.
그들의 임무는 NASA의 머큐리 계획에 사용될 우주복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빅터는 단순한 우주비행사가 아니었다.
터프츠 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해군에서 복무하며
'프로젝트 램'이라는 우주복 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는 우주복을 물속에서 테스트하고,
극한의 고도에서 시험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날도 그는 영하 94도의 혹한과 0.09 psi의 극저압 환경에서
우주복의 성능을 검증했다. 9시간 54분의 비행은 완벽한 성공이었다.
오후 4시 2분, 풍선은 멕시코만 해상에 착수했다.
임무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헬리콥터로 회수되는 일뿐이었다.
하강하는 동안 프레더는 숨을 쉴 수 있는 고도에 도달하자
헬멧의 안면 가리개를 열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었을 것이다.
작은 결정이었다.
헬리콥터가 구조 줄을 내렸다.
로스가 먼저 올라가겠다고 했으나 프레더는 양보했다.
로스는 줄을 잡고 올라가는 과정에서 미끄러졌지만 다행히 물에 빠지지 않고 회복했다.
몇 분 후 빅터의 차례가 왔다.
그는 곤돌라에 부착된 부유물 위에 서서 구조 줄을 잡았다.
그리고 미끄러졌다.
우주복은 방수였고 부력이 있었다.
수없이 연습했던 상황이었다.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빅터는 안면 가리개를 열어둔 상태였다.
물이 헬멧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구조대가 급히 달려들었지만,
무거운 우주복에 물이 가득 찬 상태에서 그를 끌어올리기엔 너무 늦었다.
빅터는 35세의 나이로 익사했다.
완벽한 성공을 거둔 지 불과 몇 분 만의 일이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그의 미망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고,
빅터에게 해군 공로 비행 십자 훈장을 추서했다.
미국 우주항공학회는 그의 이름을 딴 '빅터 A. 프레이서 상'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 모든 영예는 그가 살아서 받지 못한 것들이었다.
빅터의 죽음은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남긴다.
성공의 순간이야말로 가장 방심하기 쉬운 순간이라는 것이다.
9시간 넘게 극한의 환경에서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했지만,
안전하게 돌아왔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작은 방심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모든 상황을 철저하게 수백번 연습 했지만
나사 메뉴얼에는 우주복의 헬멧 창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비극은 항상 예측하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다.
현명한 사람은 예측보단 대비를 한다.
우리는 살아가며 크고 작은 성공을 경험한다.
시험을 마치고, 프로젝트를 완료하고, 목표를 달성한다.
그럴 때 우리는 긴장을 풀고 안도한다.
하지만 빅터의 이야기는 말한다.
끝까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안면 가리개를 여는 것은 사소한 일처럼 보였다.
숨 쉴 수 있는 고도였고, 임무는 성공했으며,
구조는 일상적인 절차였다.
하지만 그 작은 일탈이 생명을 앗아갔다.
때로는 원칙이 불편하고 번거롭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원칙은 수많은 경험과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다.
빅터는 우주복 개발에 헌신한 선구자였다.
그가 시험한 우주복의 개량형은 이후 머큐리 우주비행사들이 사용했다.
그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원칙만 지켰다면,
그는 살아서 인류의 우주 진출을 더 많이 도울 수 있었을 것이다.
성공한 순간에도 끝까지 경계를 늦추지 말자.
집에 도착할 때까지가 여행이듯, 모든 절차가 완료될 때까지가 임무다.
빅터 프레이가 우리에게 남긴 값비싼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