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손, 희생의 손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알브레히트 뒤러(독일,1471-1528)의 <기도하는 손>은

단순한 습작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굳게 모인 두 손,

피부에 배인 주름과 힘줄의 울퉁불퉁함,

하늘을 향해 쏟아내는 간절함이 백지 위에 선명하게 살아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의 진정한 가치는 보이는 것 너머,

보이지 않는 우정과 희생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Albrecht Duerer, ‘기도하는 손’(Betende Hande),1508


뒤러와 한스, 두 젊은이는 화가라는 같은 꿈을 품고 만났다.

그러나 가난이라는 현실은 그들의 꿈을 위협했다.

이때 한스가 내린 결심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대의(代議)였다.


“네가 먼저 그림을 배워라. 내가 돈을 벌어서 너를 돕겠다.”


한스의 이 말 한마디 뒤에는 자신의 꿈을 유보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희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뒤러의 꿈을 위해 자신의 손을 내어주었다.

그 손으로 힘든 노동을 하며,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미래 대신 친구의 현재를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때로 가혹한 장난을 친다.

뒤러가 마침내 성공을 맛보고 친구의 희생에 보답하려 그를 찾았을 때,

뒤러가 목격한 것은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는,

노동으로 뒤틀리고 마디마디 굳은 한스의 손이었다.

그리고 그 손은 이제 붓을 쥐는 대신,

친구의 더 큰 영광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제 친구 뒤러가… 유명한 화가가 되게 해주세요.”


이 기도는 한스의 꿈이 완전히 죽었음을,

이제 그의 모든 소망은 뒤러의 성공에 달려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이 순간 뒤러는 깨달았다.

자신의 예술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친구의 희생된 손이라는 것을.

그는 더 이상의 보상이 불가능함을 알았고,

대신 자신이 가진 유일한 능력,

그림으로 그 감동과 경의를 영원히 새겨 넣기로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기도하는 손>이다.


이 그림은 한스의 희생을, 그 순수한 우정을,

그래서 결코 잊혀서는 안 될 사랑의 형태를 온 세계에 알리는 기념비가 되었다.


Boy's Hands(1506)


흥미롭게도 역사적 사실은 이 감동적인 이야기에 살짝 찬물을 끼얹는다.

<기도하는 손>은 사실 후원자를 위한 교회 제단화의 예비 스케치 중 하나였으며,

금전적 다툼으로 인해 완성되지 못한 ‘미완성 작품’이었다고 전해진다.

아름다운 우정의 상징이 실제로는 금전 문제의 산물이라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이 ‘진실’이 그림이 품은 ‘진실’을 결코 흐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림의 제작 동기는 다를지라도,

그것이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이유는

바로 그 속에 담긴 ‘희생’과 ‘감사’의 보편적 가치 때문이다.


그림은 작가의 손을 떠나 관람자의 마음속에서 제 삶을 살아간다.

뒤러의 <기도하는 손>은 이제 한스와 뒤러의 전설과 분리될 수 없게 되었다.

때로는 차가운 현실보다,

따뜻한 전설이 우리에게 더 큰 위로와 교훈을 주는 법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그림을 바라볼 때,

그곳에 노동의 상처와 기도의 간절함이 동시에 스민

한 남자의 손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비단 한스의 손만이 아니다.

나를 위해, 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무언가를 내려놓은

모든 이의 손이기도 하다.

<기도하는 손>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당신을 위해 희생한 그 손들을 당신은 기억하고 있는가?



20251128_180153.jpg

1500년에 그린 이 작품은 유럽 역사상 최초의 독립적인 자화상으로, 인물의 정면상을 예수를 그린 성화에만 그리는 당대의 관행을 깨고 자신의 모습을 정면상으로 그렸다.



20251128_180524.jpg 그리스도를위한 애가 1498


다운로드.jpg 13살 때 알브레히트 뒤러


https://www.youtube.com/live/WPOu6aaW35Q?si=-DEpU31ga3dl56K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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