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에 담긴 충직한 벗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위업을 마치고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영웅 오디세우스를 반겨준 것은 늙은 개 아르고스였다.

충직한 사냥개 아르고스는 거지로 변장한 주인을 한눈에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며 반긴 뒤 숨을 거뒀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17세기 프랑스 궁정화가 시몽 부에의 그림을 도안으로 만든

태피스트리 '오디세우스를 알아보는 아르고스'(1650년경)로 재현됐다.


오디세우스를 알아보는 아르고스, 1650년경


인간과 개가 함께한 역사는 1만4000년을 헤아린다.

동물의 세계에서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종이 끈끈한 우정을 나누는 사례는 흔치 않다.

오늘날 우리가 애완견과 함께 사진을 찍듯이 인간이 고대부터 미술 작품 속에 수많은 개를

그려 넣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무덤 벽화에는 이미 사냥개들이 등장한다.

기원전 1400년경의 투탕카멘 무덤에서 발견된 벽화 속 개들은 파라오의 사냥을

돕는 충직한 동반자로 묘사되었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를 거치며 개는 충성과 경계, 보호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벽화 속에 파라오 하운드



실제 파라오 하운드 모습


중세에는 귀족들의 사냥 장면을 담은 태피스트리와 필사본 장식화에 개들이 빈번히 등장했다.

15세기 플랑드르 화가들은 실내 장면 속에 작은 개를 그려 넣어 가정의 충실함을 상징했다.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1434)에 등장하는 작은 테리어는 부부간의 신의를

의미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1.jpg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22.jpg 부분 상세도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는 티치아노가 귀족들의 초상화에

그들의 애완견을 함께 그려 넣었다.

베로네세의 '가나의 혼인잔치'(1563)에는 식탁 아래 개들이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이 시기 개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주인의 지위와 성품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였다.


10cana_helmut_lang.jpg BOSCH, HieronymusMarriage Feast at Cana


17세기 바로크 시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1656)에는

화면 전면에 당당히 누운 대형 마스티프가 등장한다.

플랑드르의 거장 루벤스는 자신의 가족 초상화에 충직한 사냥개를 그려 넣었고,

반 다이크는 영국 귀족들과 그들의 개를 함께 화폭에 담았다.



c57a022ccb5aa.png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


18세기 로코코 시대에는 작고 사랑스러운 애완견이 유행했다.

프라고나르와 부셰의 그림 속에는 부드러운 털을 가진

작은 개들이 부유한 여성들의 무릎에 앉아 있다.

영국의 윌리엄 호가스는 자화상에 자신의 애완견 퍼그를

그려 넣어 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666.jpg 윌리엄 호가스, 화가와 그의 반려견 퍼그, 1745, 캔버스에 유채


19세기에 이르러 개는 더욱 개성적인 주제가 되었다.

에드윈 랜드시어는 개를 주인공으로 한 감동적인 장면들을 그렸고,

르누아르는 인상주의적 터치로 개의 생동감을 포착했다.

고갱은 타히티에서 개를 그렸고,

툴루즈 로트레크는 몽마르트르의 개들을 스케치했다.


99.jpg 에드윈 랜시어의 1820년 작품인 '조난자를 구조하는 알파인 마스티프'


20세기 들어 피카소는 아프간 하운드를 키우며 여러 점의 개 그림을 남겼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움직이는 개의 역동성을 포착했고,

데이비드 호크니는 자신의 닥스훈트들을 수없이 그렸다.

현대에 이르러 제프 쿤스의 거대한 풍선 개 조각은

개에 대한 대중의 애정을 팝아트로 승화시켰다.


777.jpg 데이비드 호크니, Dog Painting 22, 1955


화폭 속 개들은 시대마다 다른 의미를 지녔지만,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 곁을 지키는 충직한 동반자로서의 위치이다.

아르고스가 주인을 알아본 그 순간부터 오늘날까지,

개는 예술 속에서 우리 삶의 가장 따뜻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888.png 파블로 피카소, Femme au chien, 1962



555.jpg nthony van Dyck, Five Eldest Children of Charles I, 1637



89.jpg Jose Moreno Carbonero, Prince Carlos of Viana, 1881


쇼팽, 강아지 왈츠

https://youtu.be/Ywp_kmujf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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