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아크셀리 갈렌 칼레라(Akseli Gallen-Kallela, 1865-1931)의 작품 「Lost」 를 보면,
화폭 전체를 감싸는 깊은 분노가 먼저 다가온다.
어린 소녀 하나가 짙은 숲속에 화난 표정으로 홀로 앉아 있다.
맨발의 소녀는 초라한 옷차림으로 나무들 사이에 멈춰 선 채,
황망한 시선을 허공에 던지고 있다. 그녀의 머리에 걸쳐져 있어야 할 스카프는 풀려 있다.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가슴 아프다.
소녀는 절대 원치 않았던 임신을 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부모에게 고백했지만,
그녀가 받은 것은 이해가 아닌 추방이었다.
집에서 쫓겨난 소녀는 이 황폐화된 숲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누구의 관심도, 도움도 없이 홀로 아이를 낳아야 할 것이다.
19세기 핀란드에서 스카프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기혼 여성과 결혼 적령기의 처녀들이 스카프를 머리에 맸던 것은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그런데 소녀는 그 스카프를 풀었다.
이는 그녀가 더 이상 기혼 여성도,
결혼을 앞둔 처녀도 아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는 사회가 정의한 모든 범주에서 벗어나,
어떤 자리도 찾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작품의 초안 '은밀한 탄생'을 보면 이 비극의 전모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소녀 옆에는 갓 태어난 듯 보이는, 울고 있는 신생아가 있다.
배경은 막 화마가 휩쓸고 간 듯 더더욱 처참하고 참담하다.
불에 탄 듯한 황량한 숲은 소녀의 절망스러운 상황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자연조차 그녀를 거부하는 듯하다.
소녀의 표정에서 읽히는 것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다.
아직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 운명,
사회로부터 영원히 추방당한 삶,
그리고 도움의 손길 하나 없이 홀로 감당해야 할 고통.
이 모든 것이 그녀의 눈빛에 응축되어 있다.
갈렌-칼렐라는 이 작품을 파리 유학을 마치고 핀란드와 프랑스를 오가던 1886년에 그렸다.
당시 그는 자연주의 화풍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그리고 있었다.
「Lost」는 바로 그 시기의 산물이다.
화가는 19세기 핀란드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짓밟힌 존재,
미혼모가 된 소녀의 비극을 통해 당대의 잔혹한 도덕률을 고발한다.
짓밟히고 만 소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을 마주한 세계.
당시 유럽 전역에서 미혼모는 수치와 죄악의 상징이었다.
그들은 가족에게서 버림받고,
사회에서 추방당했으며,
종종 목숨을 걸고 혼자 출산해야 했다.
갈렌-칼렐라는 이 한 폭의 그림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그려진 시점이다.
갈렌-칼렐라는 아직 자신의 딸 임피 마르야타를 잃기 전이었다.
1895년 디프테리아로 딸을 잃은 이후 그의 작품 세계는 낭만적 화풍에서 공격적이고
강렬한 표현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Lost」에는 이미 상실과 절망에 대한 예감이 스며있는 듯하다.
마치 화가가 자신도 모르게 다가올 비극의 그림자를 감지하고 있었던 것처럼.
작품을 보고 돌아서면서도 소녀의 시선이 따라온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침묵이다. 답을 요구하지 않는 침묵.
어떤 세상은 참으로 잔혹하고, 눈물겹다.
그 침묵 속에 갈렌-칼렐라가 평생 천착했던 핀란드의 영혼, 고독과 인내,
그리고 상실의 무게가 응축되어 있다.
「Lost」는 단순히 길을 잃은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로부터 영원히 길을 잃은, 돌아갈 곳을 상실한 한 영혼의 초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