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응시하는 예술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미술사에서 사형 장면을 그린 작품들은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선다.

이 그림들은 권력의 폭력성, 인간 존엄의 취약함,

그리고 역사의 비극을 응시하게 만드는 강력한 증언이다.

시대와 지역을 넘어 여러 화가들이 처형의 순간을 캔버스에 담았고,

각각의 작품은 고유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20251206_063834.jpg 고야, 1808년 5월 3일의 학살(1814)



전쟁의 참화 15장-그리고 거기선 저항자에게 어떤 도움도 없다(And theres no help against).jpg 고야, 전쟁의 참화 15장-그리고 거기선 저항자에게 어떤 도움도 없다(And theres no help against)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1814)은 이 주제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나폴레옹 군대에 의해 처형되는 스페인 민간인들의 마지막 순간을 포착한 이 그림은,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흰 셔츠를 입고 두 팔을 벌린 남자의 자세는 십자가형을 연상시킨다.

어둠 속에서 그를 비추는 랜턴의 빛은 극적인 명암을 만들어내며,

무명의 희생자를 역사의 중심으로 끌어올린다.

얼굴 없는 프랑스 병사들은 획일적인 살인 기계로 묘사되어,

국가 폭력의 비인간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고야는 전쟁을 미화하지 않고 날것의 현실로 보여주었다.


Edouard_Manet_022.jpg 마네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1867~68


에두아르 마네는 고야에게서 영감을 받아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을 그렸다.

멕시코 황제 막시밀리안이 1867년 케레타로에서 두 장군과 함께 총살당하는 장면이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된 이 작품은

고야의 구도를 차용하면서도 마네 특유의 냉정한 시선을 담았다.

처형자들은 프랑스군 군복을 입고 있어,

나폴레옹 3세의 제국주의 정책을 비판하는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마네는 역사적 비극을 통해 동시대의 권력을 고발했다.


20251206_065618.jpg 제인 그레이(Lady Jane Grey)의 사형 집행. 1833


폴 들라로슈의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처형」은 다른 감성으로 다가온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된 이 대작은 눈가리개를 한 16세 소녀가 참수형 집행대에

머리를 놓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을 극적으로 포착했다.

흰 드레스를 입은 제인의 순결함과 주변의 어둠이 대비되며,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 된 무고한 생명의 비극을 강조한다.

들라로슈는 역사적 사실에 낭만주의적 감수성을 더해 관람자의 연민을 이끌어낸다.


L20110620.22021195549i1.jpg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20세기에 들어서도 예술가들은 처형 장면을 통해 시대의 폭력을 증언했다.

파블로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1951)은 고야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한국전쟁 중 민간인 학살을 다룬 이 반전 작품에서,

피카소는 고야의 구도를 흡수하여 자신만의 입체파적 언어로 번역했다.

전쟁의 참상은 시대가 바뀌어도 반복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666.jpg 바실리 수리코프, 스트렐치 처형일 아침, 1881


바실리 수리코프의 「스트렐치 처형의 아침」은 러시아 역사의 어두운 순간을 담았다.

모스크바에서 실제 일어난 대규모 처형 장면으로,

군중 속에서 처형당하는 사람들을 목격하는 남녀와 어린이들의 슬픔과 복수심이 화면 가득 펼쳐진다.

수리코프는 개인의 비극이 아닌 집단적 트라우마를 그렸다.


01.34427549.1.jpg 위에민준, 처형, 1995


중국 현대 작가 위에민준의 「처형」(1995)은 가장 최근의 증언이다.

1989년 천안문 사태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작가는 이것이 직접적인 묘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웃는 얼굴들이 처형 장면에 등장하는 아이러니는,

현대 중국 사회의 억압과 침묵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이 작품은 2007년 중국 현대 미술 작품 중 최고가에 낙찰되었다.


이 작품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무엇인가.

화가들은 사형 장면을 통해 권력이 생명을 짓밟는 순간을 기록했다.

동시에 죽음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 존엄을 증언했다.

고야부터 위에민준까지,

시대는 달라도 예술가들은 폭력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이 기억과 증언임을 알고 있었다.

이 그림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역사의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이 참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무엇을 할 것인가.


사형 장면을 그린 예술은 불편하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우리를 깨어 있게 만든다.

죽음을 응시하는 예술 앞에서,

우리는 생명의 존엄과 평화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https://youtu.be/i3Fuj7Nc7Qo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숲속의 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