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푸른빛이 감도는 벽 앞, 한 쌍의 남녀가 공중에 떠 있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격정보다는 고요한 신뢰로 다가오는 남편을 바라보고,
빨간 재킷을 입은 남성은 어린아이처럼 그녀의 어깨에 걸터앉아 포도주 잔을 들었다.
마르크 샤갈의 ‘포도주 잔을 든 두 사람의 초상화’(1917~1918)는
단순한 결혼 기념 초상화를 넘어, 사랑이 만들어 낸 기적 같은 순간을 포착한 작품이다.
그림 속 남성은 바로 샤갈 자신이며, 여인은 그의 아내 벨라 로젠펠트이다.
그들은 1909년, 벨라가 14살, 샤갈이 21살 때 첫 만남을 가졌다.
첫눈에 반한 사랑은 6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결혼으로 꽃피었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가난한 화가인 샤갈과 부유한 유대인 가정의 딸 벨라의 사랑은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샤갈은 파리에서의 유학 시절 벨라를 그리워하며 ‘검은 장갑을 낀 약혼녀’ 같은 초상화를
그리며 사랑을 지켜냈고, 마침내 1915년 결혼을 인정받았다.
이 그림은 그러한 고난을 이겨낸 사랑의 승리이자,
신혼의 기쁨이 폭발하는 순간을 담고 있다.
샤갈은 벨라의 어깨 위에 가벼운 몸짓으로 올라탄 자신을 그리며,
사랑의 행복이 인간을 초월한 경지로 끌어올린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하늘을 나는 연인의 모습은 샤갈 작품의 단골 소재이지만,
이 그림에서의 비상(飛上)은 특히 생동감 넘친다.
벨라의 발밑에는 그들의 고향 비테프스크의 풍경이 놓여 있으며,
머리 위로는 자주색 천사가 날개를 펼쳐 축복을 내리고 있다.
색채도 이 행복한 감정을 한껏 부각시킨다.
벨라의 순백색 웨딩드레스와 샤갈의 불꽃같은 빨간 재킷은 서로를 강조하며,
배경의 청록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져 마치 축제의 현장 같은 화면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포도주 잔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사랑의 기쁨을 축하하는 축배이자 생명의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예술가는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편견을 샤갈은 이 그림으로 무너뜨린다.
그는 예술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아내 벨라를 깊이 사랑했으며,
그 사랑이 그의 창작에 끝없는 영감을 주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그녀의 침묵은 나의 침묵이고, 그녀의 눈은 내 눈이다.
나는 그녀가 나를 항상 보고 있는 것으로 느낀다”.
‘포도주 잔을 든 두 사람의 초상화’는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랑만은 영원히 빛나리라는 믿음을 전한다.
샤갈과 벨라는 29년의 결혼 생활 동안 서로의 예술과 인생을 지지하며 진정한 동반자가 되었다.
이 그림은 그런 사랑의 본질을, 고귀한 색채와 상상력으로 승화시켜 보여주는 걸작이다.
우리가 사랑을 믿을 때,
비로소 인간은 날 수 있음을 샤갈은 일깨워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