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머지 강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머지 강가에 선 여인의 빨간 드레스는 너무나 선명하다.

마치 이별의 아픔을 외면이라도 하려는 듯 화려한 색채로 부둣가를 수놓는다.

제임스 티솟의 <굿바이, 머지 강에서>는 19세기 영국에서 신세계로 향하는

이민선을 배웅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화면 가득히 펼쳐진 푸른 하늘과 머지 강의 잔물결,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배의 돛대들.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림 깊숙이 스며드는 이별의 애틋함은

마치 영국 특유의 안개처럼 관객의 마음을 적셔간다.


Goodbye_on_the_Mersey.jpg Good Bye' - On the Mersey, 1880년경


화면 중앙의 여인은 단정하게 묶은 머리와 화려한 드레스로 무심코 지나가는 유람객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강 건너편에 떠 있는 배를 향해 고정되어 있다.

그 배에는 아마도 그녀의 친구가, 혹은 혈육이 탔을 것이다.

손을 흔드는 제스처는 우아하지만,

그 이면에는 영원한 이별이 될지 모른다는 예감이 서려 있다.


티솟은 이 여인을 통해 이민을 떠나는 이들을 배웅하는 이들의 복잡한 심리를 정교하게 포착했다.

슬픔보다는 체념, 기대보다는 불안이 교차하는 순간.

부둣가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

우아한 복장의 신사 숙녀부터 소박한 옷차림의 서민까지,

그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배를 배웅한다.


이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영국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내고 있다.

산업혁명의 그늘에서 가난에 시달리던 노동자 계층,

보수적인 사회에 억압받던 이들,

혹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이들.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다르지만, '희망'이라는 이름의 배에 몸을 실은 채

미지의 땅으로 향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WAITING_FOR_THE_FERRY.jpg 연락선을 기다리며


티솟의 그림에는 이민자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배웅하는 이들의 표정과 자세에서 그 이면을 읽어내야 한다.

프랑스 화가인 티솟 자신도 보불전쟁 후 영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였기에,

이별과 정착의 과정을 잘 이해했을 것이다.

그는 이 그림에서 사회적 현실을 직설적으로 고발하기보다,

은유와 상징을 통해 당시 영국 사회의 이민 현상을 우아하게 재현했다.


이 그림을 바라보면,

21세기 '교육 이민'을 떠나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자녀 교육을 위해"라는 명분 뒤에 숨은,

사회에 대한 실망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40대 중년의 위기와 재정적 불안,

그리고 새로운 땅에서의 도전.

150년이 지났어도 인간이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나는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다.


티솟의 <굿바이, 머지 강에서>는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다.

그것은 이별의 순간을 통해 인간의 희망과 좌절,

도전과 체념을 동시에 보여주는 거울이다.

오늘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새로운 삶을 꿈꾸며 고국을 등지고,

머지 강가의 여인처럼 누군가는 배웅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별의 물결은 시대를 초월하여 계속 이어져 내려온다.


A_Passing_Storm.jpg 지나가는 폭풍우, 1876


Kathleen_Newton_in_an_Armchair.jpg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캐슬린 뉴턴

** 티솟의 연인인 뉴턴과 동거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티소의 앞길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왜냐하면 그녀는 사생아를 둘이나 낳은 이혼녀였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의 잣대로는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행실의 여인이었던 것이다.


캐슬린은 28세의 젊은 나이에 결국 아편을 과다복용하고 자살한다.
티소는 1885년 강신술사가 이끄는 모임에 참석하여 죽은 캐슬린의 영과 접촉을 하였고,

<영매의 환영>이라는 작품까지 남기기도 하였다.

티소는 1885년부터 팔레스타인을 순례하는 등 종교에 전념하며 1902년 세상을 뜰 때까지

17년 동안 은둔 생활을 하며 종교화에 몰두했다.

그는 캐슬린을 잃은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여생을 보냈던 것이다.



NSC20161225_211458_edit.jpg 영매의 환영ᆞThe Apparition, 1885



https://youtu.be/VRho4EJsg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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