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끼고 베기는 식탁 위의 전쟁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슈퍼마켓 라면 코너 앞에 서면 묘한 데쟈뷰를 느낀다.

농심의 튀김우동 옆에 오뚜기의 튀김우동이,

농심의 육개장 옆에 삼양의 육개장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같은 이름, 비슷한 포장, 흡사한 맛. 누가 원조이고

누가 복제품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 식품 업계의 민낯이다.



농심이 짜파게티로 대박을 치자 오뚜기가 진짬뽕으로 맞받아쳤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진짬뽕이 더 큰 히트를 기록하자,

이번에는 농심이 유사 제품으로 뒤늦게 뛰어든다.


누가 베꼈는지조차 헷갈리는 이 악순환 속에서,

소비자들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진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Z세대를 중심으로 '농심 육개장과

삼양 육개장 중 어느 것이 원조인가'라는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농심의 육개장은 1982년, 삼양의 육개장은 1985년에 출시되었지만,

출시 시기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젊은 세대에게는 구분이 어렵다는 것이다.



누가바와 누크바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한 제품이 성공하면 다른 기업들이 재빨리 베끼고,

또 다른 기업이 그것을 또 베낀다.

이렇게 '베끼고 베기는' 끔찍한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문제는 이러한 관행이 단순히 대기업들 사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상공인들도 이 전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로제 떡볶이 프랜차이즈 '배떡'이 원래 가맹점이었던

'떡군이네'의 레시피를 그대로 가져가 창업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2020년에는 파리바게뜨가 출시한 감자빵이

춘천의 한 소상공인 베이커리 제품과 유사하다는 논란이 있었고,

파리바게뜨는 결국 판매를 중단했다.

대기업의 자본력과 유통망을 앞세운 베끼기는 소상공인의 생존권을 위협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는 것일까.

식품 조리법의 경우 '맛'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아

기술의 진보성을 입증하기 어렵고,

맛 자체는 지식재산권으로 보호받지 않기 때문이다.



1974년 초코파이를 출시한 오리온은 롯데제과와 1990년대까지 법적 공방을 벌였지만

브랜드명의 고유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CJ제일제당도 자사 '컵반'과 유사한 제품을 출시했다며

동원F&B와 오뚜기를 상대로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기각당했다.


그러나 최근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2024년 빙그레는 서주의 '메론바'가 자사 '메로나'의 포장 디자인과 유사하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항소심 승소를 거두며,

모방 제품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선례를 만들었다.

이는 식품업계의 오랜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었다.

대기업들의 모방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위험 부담과 비용을 줄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 전체의 혁신 동력을 약화시키고

소비자에게 피로감만 안겨준다.

소비자들은 선발 제품과 비교해 차별성이 없거나

품질이 뒤떨어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 식품 업계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남의 성공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창적인 맛과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이다.



K-푸드가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는 지금,

국내 시장에서조차 원조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 부끄러운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베끼고 베기는 진흙탕 싸움을 멈추고,

창의성과 정직함으로 경쟁하는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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