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의 추억

추억 속으로

by 제임스

그때 그 시절,

국민학교 6학년, 어느 추운 겨울날,

따뜻한 수증기의 열기는 소중한 위안이었다.

국민학교 근처 그 목욕탕에서는 항상 싱싱한 목욕비누 냄새와

볕에 말린 수건의 포근함이 배어 있었다.

입구는 큰 도로를 마주하고 있었지만,

수증기를 빼내는 작은 창문이 있던 쪽은 후미진 골목길로 이어져 있었다.



그 창문이 우리 삼총사의 운명을 가른 장소가 될 줄은 누가 알았으랴.

방과 후 과외가 끝나면 우리는 집으로 곧장 가지 않았다.

하루의 마지막 자유를 만끽하며 길을 돌고 돌던 어느 날,

한 친구가 입을 열었다.


“저기… 여탕 창문, 한번 보자.”


그의 말에는 형들이 많은 집에 자란 조숙함이 서려 있었고,

그의 눈빛에는 금지된 것에 대한 호기심이 반짝였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범생이라는 소리를 들은 지 오래였지만,

이번만큼은 그 말이 고스란히 와닿았다.

다른 친구는 망설였고,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우물쭈물했다.


“야, 너 그냥 무등만 태워 줘. 내가 볼게.”


그의 압박에, 혹은 나의 나약함에, 결국 나는 그를 업었다.

내 어깨 위에서 그는 세상을 정복한 듯한 표정이었다.

차가운 벽돌 벽, 흐릿하게 보이는 창유리.

시간은 그 순간 얼어붙은 듯했다.

그가 내려올 생각을 잊은 채, 나의 다리는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왔다. 힘이 확 빠져 나는 주저앉았고,

친구의 손은 창틀을 잡고 매달렸다.



외마디 비명이 골목을 찢었다.

순간, 삼총사 중 한 명은 바람처럼 사라졌고,

목욕탕 주인아줌마는 마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녀는 우리를 여탕 안으로 끌고 들어갔고,

그 순간부터 내 인생 최대의 치욕이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국민학생들은 엄마 손을 잡고 여탕을 드나들던

시절이었으니까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옷을 모두 벗고 두 손을 들고 무릎을 꿇으라는 명령에,

나는 얼굴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머리를 푹 숙이고 눈물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그 소리가 천지가 진동하는 굉음처럼 들렸다.


그런데 그 친구 녀석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이었다.

오히려 그 와중에도 힐끗힐끗 주위를 둘러보는 눈빛에서,

금지된 세계를 엿본 것에 대한 일종의 성취감까지 느끼는 듯했다.


본 사건과 전혀 관련없는 이미지


여탕을 드나드는 손님들의 말이 칼날처럼 날아왔다.


“보고 싶으면 엄마한테 보여 달라고 하지! 이 못된 녀석들!”


그때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차라리 땅이 갈라져 들어갔으면,

그 안에 묻혀 영원히 사라지고 싶었다.


아주머니의 훈계가 끝나고,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옷을 입으려는 그 순간, 목욕탕 입구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 같은 반 여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선희! 그 이름만으로도 심장이 멎을 듯했다.

그녀의 눈은 순간적으로 커졌고,

입가에선 외마디 비명이 나왔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뛰쳐나왔다.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런데 인연이란 참으로 기묘한 것이다.

대학교 영화 동아리 신입 부원 환영회에서,

그 이름이 다시 불렸다.



“선희입니다!”


그 순간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치듯 나왔다.

그날 밤, 나는 영화계의 꿈을 접었다.

그 꿈은 목욕탕의 뜨거운 수증기처럼 공중으로 사라져 버렸고,

나는 평범한 직장인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목욕탕의 치욕은 어린 시절의 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는지도 모른다.

수치심과 당혹감으로 얼룩진 그날의 기억은,

이상하게도 이제는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날의 우리는 정말로 ‘나쁜’ 아이들이라기보다,

세상의 경계를 탐험하고 싶었던 호기심 많은 철부지들이었으니까.


아마 선희도, 지금쯤이면 그날의 웃지 못할 사건을 이해해 줄 것 같다.

목욕탕의 뜨거운 수증기처럼,

시간은 모든 굴욕을 포근한 추억으로 승화시키는 마법을 가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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