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 선 사랑의 기록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모네의 작품 앞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1879년 9월 5일,

서른두 살의 카미유 동시외가 숨을 거두던 순간을 그린 「임종의 카미유」.

캔버스는 차갑고 푸른 색조로 가득했다.

죽음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image.jpg 클로드 모네, 임종을 맞은 카미유, 1879


모네는 사랑하는 아내의 마지막 순간에도 붓을 들었다.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예술가의 냉혹함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림 속 붓질에서 오히려 절망적인 사랑을 읽는다.

희미해져가는 아내의 얼굴,

그 위로 스며드는 새벽빛의 보랏빛과 푸른빛.

모네는 빛의 화가답게 죽음마저 빛의 변화로 포착했다.

생명이 빠져나가며 변해가는 피부의 색,

그 미묘한 톤의 변화를 그는 놓치지 않았다.


SE-aad32af6-6674-47f9-9a7b-4c3795795cf8.jpg 클로드 모네, 양산 쓴 여인, 1875


카미유는 모네의 뮤즈였고, 동반자였으며, 가난한 시절을 함께 견딘 동지였다.

「양산을 든 여인」에서 그녀는 햇살 아래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언덕 위에서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며 뒤돌아보았다.

그 모든 빛나는 순간들이 이제 이 어두운 침실로 수렴되었다.


그런데 모네만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붓을 든 것은 아니었다.

노르웨이의 에드바르 뭉크는 1895년 「임종의 침상에서」를 그렸다.

뭉크는 다섯 살에 어머니를 결핵으로 잃었고,

9년 후 누나 소피도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는 자신의 노트에 이렇게 썼다.


Edvard_Munch_At_the_Deathbed_1895_121x90_Rasmus_Meyer_Collection_KODE_Bergen.jpg 뭉크, 임종(At the Deathbed), 1895


"질병, 광기, 그리고 죽음은 내 요람을 지켜보던 검은 천사들이었고,

그 이후로 내 삶을 따라다녔다."


뭉크의 그림은 모네와는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포착한다.

임종을 앞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침상 주위에 모여 선 가족들이다.

각기 다른 자세로 서 있는 애도자들,

그들의 고립된 슬픔이 붉은 배경 앞에서 더욱 강렬하게 부각된다.

흥미롭게도 왼쪽에서 네 번째 애도자는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림을 보는 우리를 똑바로 응시한다.

해골처럼 보이는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며,

언젠가 죽음이 우리에게도 올 것임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스위스 화가 페르디난트 호들러의 작업이다.

1914년 11월부터 1915년 1월까지,

호들러는 난소암으로 죽어가는 연인 발렌틴 고데-다렐을

200점 이상의 스케치와 그림으로 기록했다.


모네가 한 장의 그림으로 순간을 포착했다면,

스위스의 국민화가 호들러(1853~1918)는 죽음의 전 과정을 기록했다.

1912년의 건강한 모습에서 시작해,

1914년 6월 두 번째 수술 후 침대에 누운 모습,

1915년 1월 2일 눈을 감고 잠든 모습,

1월 19일 고통스러워하는 얼굴,

사망 하루 전 의식을 잃고 입을 크게 벌린 모습,

그리고 사망 다음 날인 1월 26일의 마지막 초상까지. 총 200장.


01.39001433.1.jpg 병세가 완연한 1915년 자궁암으로 죽어가는 발렌틴


호들러는 발렌틴이 사망한 다음 날에도 그녀의 임종 침상을 그렸다.

미완성이고 스케치 같은 화풍으로 표현된 이 작품은

그의 조용한 고뇌와 함께 마침내 찾아온 종결의 순간을 전달한다.

이 연작은 의학 저널에도 실릴 정도로 죽음의 과정을 정직하게 기록했다.

이것은 사랑인가, 예술적 강박인가?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01.39001435.1.jpg 병세가 완연한 1915년 발렌틴


임종화를 그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라지는 것을 붙잡으려는 마지막 몸부림이 아닐까?

사진도 드물던 시대,

화가들에게 붓은 유일한 기록의 도구였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그 존재의 마지막 흔적을 눈에 새기고 손에 새기는 행위.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큼은 그들이 아직 거기 있었다.

캔버스 위에서라도 그들은 영원히 머물 수 있었다.


모네의 「임종의 카미유」, 뭉크의 「임종의 침상에서」, 호들러의 발렌틴 연작.

이 그림들은 모두 슬프다.

하지만 동시에 사랑의 증거이기도 하다.

죽음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기록의 의지,

사라지는 것을 붙잡으려는 예술가의 본능,

그리고 무엇보다 끝까지 당신을 보고 있겠다는,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 거기 있다.


죽음 앞에서도 붓을 놓지 못한 그들은,

그림을 통해 사라지는 것을 붙잡으려 했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절실한 형태의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누구를 사랑한다면 지금이 더 잘할 때이다."



https://youtu.be/_sha04Kk0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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