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영원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현대미술의 아버지' 폴 세잔의 사과를 처음 본 것은 미술 교과서였다.

캔버스 위에 놓인 몇 개의 사과가 전부였지만,

나는 한참을 그 앞을 떠나지 못했다.

사과는 완벽한 원이 아니었다.

기울어진 듯, 무게를 지닌 듯, 식탁은 왜곡되어 있었고

천은 흘러내릴 듯 멈춰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불완전함 속에서 사과는 그 어떤 사진보다 생생했다.

세잔은 평생 사과를 그렸다.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는 그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는 같은 사과를, 같은 식탁보를, 수십 번 반복해서 그렸다.


20220708000634_0.jpg 폴 세잔, 사과와 오렌지, 1895~1900


하지만 매번 다른 각도에서, 다른 빛으로,

다른 시간의 켜를 쌓아가며 그렸다.

그에게 정물화는 단순히 과일을 재현하는 작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보는 행위 자체에 대한 탐구였고,

대상과 화가 사이의 긴 대화였다.


식탁을 그린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겸손한 예술 행위일지도 모른다.

역사적 사건도, 위대한 영웅도, 극적인 풍경도 없다.

그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의 한 장면이다.

빵 한 조각, 와인 한 잔, 레몬 하나.

그러나 바로 그 평범함 때문에 정물화는 더 깊은 울림을 준다.


17세기 네덜란드의 미술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그림은 정물화,

그중에서도 플로리스 반 다이크(Floris van Dijk, 1575~1651)였다.

‘허무’라는 뜻의이 테마에 열광한 이들은 귀족이었다.

해골, 모래시계, 꽃, 은접시 등은 반 다이크의 주요 소재였고

귀족의 식탁에 오르던 와인, 빵 그리고 치즈 역시 자주 등장했다.

풍성하게 차려놓은 진귀한 음식도, 빛나는 보석도 죽음 앞에서는

덧없는 일임을 이야기하던 바니타스 속에서도 치즈는 단골 소재였다.


Cap 2026-01-18 18-59-03.jpg 반 다이크, 치즈가 있는 정물, 1615


조르조 모란디는 더 나아갔다.

그는 먼지 쌓인 병 몇 개만으로 평생을 그렸다.

같은 병들을 조금씩 다른 위치에 놓고,

미세하게 변하는 빛을 관찰하며, 침묵의 회화를 완성했다.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세상이 조용해진다.

병들은 그저 거기 있을 뿐인데, 그 존재만으로 충만하다.


Cap 2026-01-18 19-10-45.jpg 조르지오 모란디, 무제2


식탁과 음식을 그린 화가들은 결국 시간을 그린 것이 아닐까.

썩어가는 과일, 식어가는 음식, 사그라드는 빛.

정물화 속 대상들은 모두 시간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

하지만 동시에 캔버스 위에서 그것들은 영원히 그 순간에 머문다.

세잔의 사과는 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무게를 간직하고,

모란디의 병은 지금도 그 고요 속에 서 있다.


우리는 매일 식탁 앞에 앉는다. 서둘러 식사를 하고,

접시를 치우고, 일상을 이어간다.

하지만 가끔은 세잔처럼, 모란디처럼,

그 평범한 순간을 천천히 바라보면 어떨까?

사과의 무게를, 빛의 각도를, 정물의 시간을 느끼며.

그러면 우리의 일상도, 우리의 식탁도, 조금은 다르게 보일지 모른다.



65710_45749_285.png 조르조 모란디, 정물화(Natura Morta), 1951



20241018050718_0.jpg 세잔의 ‘사과가 있는 정물’(1890)




https://youtu.be/Tr8IRfND-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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