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담뱃갑 은박지에 뾰족한 못으로 윤곽선을 그린 뒤 먹물을 문질러 완성하는
독특한 기법으로 탄생한 이중섭의 은지화는 단순히 가난이 낳은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과 이별, 절망 속에서도 화폭을 놓지 않았던 한 예술가의 불굴의 의지이자,
사랑하는 가족을 향한 애절한 그리움의 기록이다.
손바닥만 한 은박지 위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경이롭다.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된 '낙원의 가족'에서는 물고기를 잡으며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생동감 넘치는 곡선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중력을 거스르고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중섭이 그토록 갈망했던 행복의 이상향이다.
수평선 아래 배에 탄 두 사람은 아마도 부모일 것이다.
한 사람이 손짓하지만 아이들은 물고기와 어울려 놀기에 여념이 없다.
'애들과 물고기와 게'에서는 농밀한 색채와 간결한 데생으로
해맑고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를 표현했다.
이 작품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물고기와 게는 제주도 서귀포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마지막 행복한 시간의 흔적이다.
배가 고파 게를 잡아먹었던 절박한 순간조차 화가는 그림으로 승화시켰다.
그에게 게는 단순한 먹이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였던 시간을 상징하는 소중한 기억이었다.
은지화 또 다른 대표작인 '가족을 그리는 화가'는 더욱 자전적이다.
화가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장면을 그린 이 작품은
메타적 구조를 통해 이중섭의 예술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에게 그림은 가족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리움을 달래는 치유의 수단이었다.
담뱃갑 속 은박지에 못이나 꼬챙이로 새긴 후 고려청자 상감기법처럼
미세한 음각에 물감을 발라 완성하는 이 독특한 제작 방식은
결과적으로 작품에 특별한 아우라를 부여했다.
은빛 바탕이 주는 은은한 광택, 섬세한 선각이 만들어내는 촉각적 질감,
그리고 물감이 스며든 홈이 드러내는 강렬한 선은
캔버스 회화와는 전혀 다른 조형미를 창조했다.
이중섭은 생전에 은지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기법이나 형식이 아니라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절실함과 순수함이 은지화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은박지가 포함된 담배 자체가 저렴하지 않았음에도 은지화를 그렸다는 사실은
혼란스러운 전쟁과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예술혼을 증명한다.
1953년 일본으로 건너가 아내에게 건넨 은지화 70여 점은
이중섭이 구상했던 대작의 습작이자 밑그림이었다.
그는 언젠가 사원이나 집의 천장과 벽을 가득 채울 벽화를
그리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은박지 위의 작은 그림들은 그 원대한 꿈의 씨앗이었던 셈이다.
두 아들 태현과 태성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그림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형제가 다투지 않도록 같은 그림을 각자 앞으로 따로 그려주었던 아버지의 세심한 배려.
그 속에는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함과 애틋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미국공보원장 아서 맥타가트가 입수해 뉴욕 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은지화 3점은
이중섭 사후에야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영광을 누렸다.
생전에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던 작품들이
오늘날 우리 근대미술의 가장 소중한 유산으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은
씁쓸하면서도 감사한 일이다.
은박지에 새겨진 선 하나하나에는 이중섭의 숨결이 살아 있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제주도에서의 시간,
일본으로 떠난 가족을 향한 끝없는 그리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
그 모든 감정이 손바닥만 한 은박지 위에서 생명을 얻어
지금까지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이중섭의 은지화는 가난이 낳은 우연한 산물이 아니라 사랑과 그리움,
예술혼이 빚어낸 필연의 걸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