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의 현실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주말이면 공원마다 유모차 행렬이 장관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 안에 탄 것은 아기가 아니라 강아지들이었다.

개모차라 불리던 그것은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다.

개모차 판매량이 유아용 유모차를 앞지르고,

한 끼에 10만 원이 넘는 강아지 오마카세가 예약으로 꽉 차던 시절.

강아지 유치원 등록비가 사람 유치원보다 비싸도 사람들은 주저 없이 지갑을 열었다.

펫팸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반려동물은 더 이상 동물이 아니라 내 자식이고 가족이라는 선언이었다.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운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졌다.

그 시절, 우리는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2026년 2월,

지금 그 공원의 풍경은 어떻게 변했는가?

유모차 부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인적 드문 국도변이나 야산 입구에 종이 박스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도심 한복판 전봇대에는 비싼 목줄을 찬 채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들이 묶여 있다.

하염없이, 끝없이.


유기동물 보호소는 이미 포화 상태를 넘어섰다.

살처분, 즉 안락사가 일상이 되었다.

예전에는 주로 믹스견이나 시골개들이 들어왔지만 지금은 다르다.

수백만 원 주고 분양받았던 비숑, 포메라니안, 말티즈 같은 품종견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목에는 여전히 비싼 목걸이를 하고, 몸에는 명품 옷을 입은 채로.

법적 보호 기간 10일이 지나면 가차 없이 안락사가 집행된다.

매일 아침 수십 마리의 개와 고양이가 주사 한 방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다.



내 자식이라던 그 맹세는 어디로 갔을까?

가족이라던 그 사랑은 왜 이렇게 쉽게 버려지게 된 것일까?


비극의 시작은 돈이었다.

환율 폭등과 살인적인 물가 상승이 반려동물의 밥그릇을 직격했다.

강아지와 고양이 사료의 원료는 대부분 수입산 곡물과 고기다.

환율이 오르고 국제 곡물 가격이 치솟자 사료 가격이 폭등했다.

3년 전 2만 원 하던 사료 한 포대가 지금은 4만 원, 5만 원이다.

간식값은 더 올랐다.

사람이 먹을 쌀 살 돈도 없는 판국에 강아지 사료값이 사람 밥값보다 비싸졌다.


더 결정적인 타격은 동물병원비였다.

반려동물에게는 의료보험이 없다.

감기 한 번 걸려도 몇만 원, 다리라도 부러지면 수십만 원이 깨진다.

노령견이나 노령묘는 사람처럼 아픈 곳이 많다.

심장병, 신장병, 암. 검사 한 번 하면 MRI 찍고 피 검사하고 100만 원이 우습게 나간다.

수술이라도 하면 300만 원, 500만 원이다.



2026년 2월, 지금 당장 카드값 맞추기도 벅찬 서민들에게 500만 원은 천문학적 금액이다.

인간은 끔찍한 선택의 기로에 선다.

내 가족의 생명을 살릴 것인가, 아니면 내 생존을 위해 포기할 것인가.

과거 경제가 좋을 때는 할부로 긁어서라도 고쳐줬다.

하지만 지금은 냉혹하다.


"수의사 선생님, 그냥 안락사 시켜주세요. 치료 못 합니다. 돈 없습니다."


병원 진료실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이다.

수의사들이 치료하면 살 수 있다고 설득해도 보호자는 눈물을 머금고,

아니 어쩌면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병원비가 없어서 아픈 동물을 방치하거나 심지어 유기하는 사례가 폭증하고 있다.

병든 가족을 길거리에 버리는 패륜이 경제 논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


이 파장은 관련 산업 전체를 붕괴시켰다.

한 집 건너 하나씩 생겼던 무인 펫샵, 애견 미용실, 애견 유치원.

지금 거리를 보라. 다 문 닫았다.


미용비 5만 원, 10만 원이 아까워서 집에서 가위로 털을 깎는다.

유치원 보낼 돈이 없어서 그냥 집에 가둬둔다.

간식을 안 사 먹이니 수제 간식점은 전멸했다.

황금알을 낳는 시장이라고,

블루오션이라고 퇴직금 털어 창업했던 자영업자들은 기계값도 못 건지고 폐업했다.



동물병원도 예외가 아니다.

동네 작은 동물병원들은 경영난에 시달리다 못해 줄도산하고 있다.

사람들이 아파도 병원에 데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예방 접종도 안 맞히고, 심장사상충 약도 안 먹인다.

그냥 아프면 죽는 거지, 운명이다.

이렇게 방치한다.

수의사들도 월세를 못 내서 병원 문을 닫고 페이닥터 자리를 알아보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다.


동물의 삶은 그 사회의 경제 수준을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거울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다.

내 배가 불러야 강아지 밥도 챙기고,

내 삶이 여유가 있어야 고양이 화장실 모래도 갈아준다.

지금 대한민국의 경제는 극심한 양극화 과정에 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판국에 동물의 생명권 따위는 사치스러운 논쟁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그동안 반려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나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액세서리 취급이었는지도 모른다.

돈이 들고 귀찮아지니까 헌 신발 버리듯이 내다 버리는 모습을 보라.

그 버려진 눈망울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가족이라면서요? 끝까지 책임진다면서요?"



하지만 우리는 대답할 수 없다.

우리 코가 석 자니까.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는 개도 사람도 모두 고달픈, 하향 평준화된 비극의 시대다.

빈곤은 이렇게 가장 약한 존재부터 잔인하게 짓밟으며 우리의 일상을 파괴하고 있다.

돈 때문에 가족이라던 반려동물마저 버렸다.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반려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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