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병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우리는 가끔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닿고 싶은 꿈의 목적지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매일 아침 지옥철이라 불리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무채색 빌딩 숲 사이를 바쁘게 가로지르며,

무표정한 얼굴로 타인을 스쳐 지나가는 우리의 일상.


하지만 최근 중국의 MZ세대 사이에서 급격히 번지고 있는

서울병(Seoul Syndrome)’이라는 기묘한 현상은

우리가 무심히 흘려보낸 이 도시의 조각들이 누군가에게는

치유와 동경의 대상임을 일깨워준다.


‘서울병’이란 단순히 여행이 끝나 아쉬운 마음을 넘어,

서울을 다녀온 뒤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그 도시의 잔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일상생활에 지장을 느낄 정도의 강렬한 후유증을 의미한다.


중국판 틱톡 ‘더우인’에 올라온 ‘서울병’ 영상. “나의 서울병”, “내가 쓴 노래 하나가 있는데, 제목은 ‘서울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현상은 1980년대 일본인들이 겪었던 ‘파리 증후군’과 자주 비교되곤 하지만,

그 속내는 판이하다.

당시 일본인들이 동경하던 파리에서 불친절과 소매치기,

지저분한 거리라는 현실을 마주하며 ‘환상의 붕괴’로 인한 우울감을 겪었다면,

지금의 서울병은 ‘환상의 실현’에서 오는 지독한 그리움에 가깝다.


도대체 서울의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이토록 흔들어 놓은 것일까?

흥미롭게도 그들이 SNS에 쏟아내는 고백 속에는 화려한 K-팝 무대나

거대한 쇼핑몰보다 더 본질적인 것들이 담겨 있다.


길을 잃었을 때 목적지까지 함께 걸어주던 이름 모를 한국인의 친절,

시장통에서 말없이 반찬을 더 얹어주던 상인의 투박한 정,

그리고 밤늦은 시각에도 여자 혼자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치안과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도착하는 대중교통의 질서 같은 것들이다.



그들이 서울에서 발견한 것은 어쩌면 자신들의 삶에서

결핍된 ‘온기’와 ‘여유’일지도 모른다.

중국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내권(內卷, 네이지안)’은

끝없는 경쟁과 야근, 성과 압박으로 젊은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모두가 앞을 향해 달리지만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구조 속에서,

그들에게 서울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존재하는 ‘현실 속 낙원’으로 비쳐진다.


드라마 속 장면처럼 깨끗한 거리와 매너 있는 사람들,

그리고 세련된 문화가 공존하는 이곳에서 그들은 잠시나마 현실의

무게를 내려놓고 숨을 쉴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광장시장 같은 공간에서의 경험은 상징적이다.

처음엔 외국인을 속이는 바가지 상술을 걱정하며 발을 들였던 이들이,

갓 부쳐낸 빈대떡의 고소한 냄새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상인들의 미소에 무장해제된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시장 한복판에서 인형 뽑기를 하며

아이처럼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

서울은 더 이상 타국의 도시가 아니라 잃어버린 동심과

인간미를 되찾아주는 치유의 공간이 된다.



이제 서울은 단순히 보고 즐기는 관광지를 넘어,

하나의 정서적 브랜드가 되었다.

전문가들이 서울병을 한류의 가장 진화된 단계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콘텐츠를 소비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그 도시가 주는 감정과 경험 자체를 갈망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우리가 매일 지겹다고 투덜대며 걷는 이 회색빛 거리가 사실은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 가장 빛나는 추억으로 저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서울병은 어쩌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고 살았던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기적 같은 이상향일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중국의 MZ세대가 앓고 있는 이 열병은 결국 인간이라면

누구나 갈구하는 보편적인 가치—질서 있는 삶, 사람 사이의 온기,

그리고 나 자신이 빛날 수 있는 여유—에 대한 갈증의 표현이다.

서울은 그들에게 그 가치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거가 되어주었다.

우리가 사는 이곳 서울은 이미 누군가의 꿈 그 자체이며,

우리는 오늘도 누군가의 낙원 위를 걸어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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