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무원의 일탈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시대를 비추는 거울은 때로 일그러져 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이 실재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욕망이 투사된 정교한 편집본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대다.

최근 들려온 '68억 원 주식 대박 공무원'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과시'라는

고질병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 그야말로 웃지 못할 비극, '웃픈' 이야기였다.



사건의 발단은 화려했다.

2년 만에 4억 원을 68억 원으로 불렸다는 한 공무원의 주식 성공 신화는

투자에 목마른 이들에게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왔다.

그는 단순히 수익률만 자랑한 것이 아니었다.

"주식은 기질의 문제다", "심리가 중요하다"라며

마치 구도자 같은 자세로 대중에게 훈수를 두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철학적이고 당당했던 조언들은

결국 '그림판'이라는 허술한 도구로 빚어낸 가짜임이 밝혀졌다.

픽셀 하나하나에 숨겨진 조작의 흔적들은 그가 쌓아 올린 공든 탑이

얼마나 모래성 같았는지를 여실히 증명했다.


사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고,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것 자체는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사진을

SNS에 올리며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모습은 때로

귀엽게 보아넘길 수도 있는 일이다.



적당한 허세는 일상의 활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공적 신뢰'를 담보로 하는 공무원이 자신의 지위를

망각한 채 대중을 기망한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우리는 여기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남을 속여 재물을 편취했다면 그것은 명백한 '사기죄'로 처벌받는다.

그렇다면 거짓으로 가득 찬 판타지 소설을 써서 수많은 사람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고,

그들의 투자 판단을 흐리게 하며 '심리적 파괴'를

일삼은 행위는 대체 무슨 죄로 물어야 할까?


특히나 정직과 성실이 생명인 공무원이라는 신분을 가진 이가

일순간의 박수갈채를 위해 숫자를 조작했다는 사실은 섬뜩함마저 느끼게 한다.

"과연 그가 일상 업무에서는 얼마나 많은 조작을 하였을까?"라는

의구심은 합리적인 의심으로 번진다.

사소한 숫자 하나를 바꾸는 것에 무감각해진 손길이 공공의 이익을

다루는 서류 위에서도 춤추지 않았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의 이러한 과시욕은 비단 이 사건뿐만이 아니다.

몇 해 전, 호화로운 생활을 과시하며 '청담동 주식 부자'로 불렸던 이의 몰락이나,

SNS 속 허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수억 원의 빚을 지고

명품 대여점을 전전하는 이들의 사례는 이제 흔한 이야기가 되었다.


최근에는 이른바 '카푸어(Car Poor)'라 불리며 수입의 대부분을

외제차 할부금으로 쏟아붓는 청년들,

혹은 '전시용 독서'나 '보여주기식 오마카세' 문화 등 우리 사회 곳곳에는 실속보다는

껍데기에 집착하는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이 모든 현상의 밑바닥에는 '나'로서 존재하는 만족감보다

'남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에 목매는 슬픈 자화상이 있다.

익명 게시판에서 '주식의 신'으로 추앙받고 싶었던 그 공무원의 욕망은

결국 우리 사회가 성공을 오로지 '숫자'와 '부'로만 재단해온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것이 때론 성장의 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타인의 심리를 파괴하고 신뢰를 무너뜨리는 수준에 이른다면

그것은 범죄보다 무거운 도덕적 파멸이다.

돈은 아무나 쉽게 버는 것이 아니며,

삶의 무게 또한 가벼운 클릭 몇 번으로 조작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화려한 인증샷 뒤에 숨겨진 진실을 응시해야 할 때다.

68억 원이라는 허상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조작의 얼룩은 우리 사회가 회복해야 할

정직과 내실의 가치를 뼈아프게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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