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미디어의 초상

주절주절

by 제임스

오늘날 미디어는 대중의 눈과 귀가 되는 것을 넘어,

시대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자처한다.

그러나 최근 JTBC가 보여주는 일련의 행보는

그 거울이 심하게 왜곡되어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최근 동계올림픽 중계권 독점과 관련하여 미숙한 운영과

자사 이익 우선주의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상황은 시작에 불과했다.

공정성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뉴스 보도에서조차 특정 이념에 치우친 편향성 논란을

끊임없이 야기하며 ‘불공정 보도’의 대명사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은,

한때 신뢰의 상징이었던 채널의 몰락을 지켜보는 씁쓸함을 자아낸다.



이러한 신뢰의 위기 속에서 탄생한 예능 프로그램 ‘운명전쟁 49’는

JTBC가 가진 윤리적 부재의 정점을 보여준다.

무속인들이 실존 인물의 운명을 맞힌다는 자극적인 설정부터가 시대착오적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 과정에서 타인의 비극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제작진은 순직한 소방관의 유가족에게 접근하며 ‘영웅을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라고

기만하여 출연 동의를 얻어냈다고 한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숭고한 희생을,

고작 무속인들의 영험함을 테스트하기 위한 ‘퀴즈 거리’로 전락시킨 것이다.

이는 제작진이 시청률이라는 괴물에 영혼을 팔아넘겨,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인 ‘인류애’마저 저버렸음을 방증한다.



더욱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것은 프로그램적 모순이다.

운명을 예견한다는 출연 무속인들은 정작 해당 방송의 고정 출연자이자

논란의 중심에 섰던 전현무나 박나래와 같은 연예인들의 앞날조차 전혀 짚어내지 못했다.

촬영 기간 중 발생한 출연진의 구설이나 하차 가능성도

감지하지 못한 채 ‘운명’을 논하는 광경은,

그 자체로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상업적인 쇼에 불과한지를 보여준다.

앞날을 내다본다는 이들이 정작 자기 코앞의 캐스팅 논란조차 예견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는,

시청자들에게 신비감이 아닌 실망감만을 안겨주었다.


‘운명전쟁 49’의 더 깊은 문제점은 미디어가 샤머니즘을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여 비과학적인 맹신을 조장한다는 데 있다.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을 빌려 무속적 행위를 경쟁시키고

이를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합리적 사고 체계를 흔드는 위험한 시도다.

특히 누군가의 죽음이나 불행을 ‘맞히느냐 못 맞히느냐’의 유희적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함을 전염시킨다.



지금 JTBC에 필요한 것은 독점 중계권이나 자극적인 예능 포맷이 아니다.

언론사로서의 공정성을 회복하고, 타인의 삶과 비극을 대하는 진지한 성찰이다.

시청률은 잠시 머물다 가는 숫자일 뿐이지만,

타인의 눈물 위에 쌓아 올린 성공은 결국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운명’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누군가의 삶을 난도질하지 말아야 한다.

미디어가 제 역할을 잃었을 때,

그 화살은 결국 자신들의 ‘운명’으로 되돌아오게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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