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Roberto Matta의 그림을 보면, 우리가 딛고 선 땅이 갑자기 믿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익숙한 중력도, 익숙한 원근법도, 익숙한 색의 질서도 없다.
캔버스는 하나의 우주이고, 그 우주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 끓어오르고 있다.
마타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내부를 발굴하는 것이라 믿었다.
"나는 오직 미지의 것에만 관심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 말은 선언이 아니라 고백에 가깝다.
1911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태어난 마타는 건축을 공부하고
파리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사무실에서 일했다.
그러나 공간을 설계하는 일이 그에게는 너무 좁았다.
살바도르 달리를 통해 앙드레 브르통을 만나고,
초현실주의 그룹에 합류하면서 마타는 내면의 우주를 향한 문을 열기 시작했다.
1938년 뉴욕으로 건너간 그는 유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이후 잭슨 폴록, 로버트 마더웰 같은 미국 추상표현주의자들에게 결정적인 영감을 제공했다.
뒤샹은 그를 가리켜 "자신의 세대에서 가장 심오한 화가"라 불렀다.
《The Earth Is a Man》 (1942, 유화, 시카고 미술관 소장) 마타의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거대한 화면 위에 용암처럼 들끓는 색채와 번개 같은 선들이 충돌하며
지구 자체가 살아 숨 쉬는 생명체임을 선언한다.
건축가 출신답게 공간감이 압도적이며,
초현실주의와 추상표현주의가 폭발적으로 융합된 순간을 보여준다.
《Disasters of Mysticism》 (1942, 유화) 제2차 세계대전의 공포와 인류의 실존적 불안을
우주적 스케일로 그려낸 작품.
뒤틀린 기계적 형상들과 유기적 생명체들이 어둠 속에서 충돌하며,
전쟁의 폭력성과 신비주의적 공포가 뒤섞인 이 작품은 소더비 경매에서 260만 달러에
낙찰될 만큼 높이 평가받고 있다.
《Les Roses sont belles》 (1951, 유화) 마타 중기의 대표적 걸작.
유기적인 형상들이 우주적 공간 속에 부유하며 섬세한 빛의 그물망 속에서 서로 얽힌다.
폭력적 에너지보다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지며,
마타 특유의 색채 감각이 가장 아름답게 발화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마타의 그림은 쉬운 아름다움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한참을 들여다보면, 우리 자신의 내부도 이 혼돈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마타가 열어놓은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