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미술은 흔히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 일컬어진다.
그 거울이 비추는 대상이 우리가 쉽게 닿을 수 없는 북한이라는 땅일 때,
거울 속의 형상은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서늘한 생경함으로 다가온다.
북한 미술을 마주하는 일은 단순히 미학적 감상을 넘어,
이념과 체제라는 견고한 틀 안에서 예술가가 어떻게 숨 쉬고 있는지를 더듬어가는 과정이다.
북한 미술의 중심에는 ‘조선화(朝鮮畵)’가 있다.
이는 서양의 유화나 수채화가 아닌,
우리의 전통 수묵채색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여 발전시킨 북한 고유의 회화 형식이다.
그들은 "힘 있고, 아름답고, 고상한 것"을 조선화의 미덕으로 꼽는다.
특히 강조되는 것은 선명성이다.
전통 회화의 은은한 여백이나 모호한 번짐보다는,
대상의 형태를 또렷하게 드러내는 선묘와 화려하면서도 실감 나는 채색을 선호한다.
이러한 화풍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들이 바로 북한의 4대 거장이라 불리는
정창모, 선우영, 리석호, 김상직이다.
특히 선우영 화백의 작품은 그 정밀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의 대표작인 <백두산 호랑이>나 <칠보산의 여름>을 보면,
바위의 거친 질감과 호랑이의 털 한 올 한 올이 마치 살아 움직일 듯 생생하다.
그는 이를 위해 ‘진채세화 기법’이라는 세밀한 화법을 완성했는데,
이는 자연의 강인한 생명력을 드러내려는 북한 미술의 의지를 보여준다.
반면, 월북 화가 정창모는 보다 서정적인 세계를 그린다.
그의 작품 <풍요한 가을>이나 <백목련>은 전통적인 몰골법
(윤곽선 없이 색채만으로 형태를 잡는 기법)을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북한 미술 특유의 힘 있는 필치 속에서도 부드러운 정취를 잃지 않는다.
붓이 바람을 가르듯 거침없으면서도 절제된 그의 리듬감은
북한 미술이 단순한 선전 도구를 넘어 고도의 예술적 완숙미를 갖추고 있음을 증명한다.
물론 북한 미술에서 정치를 떼어놓고 생각하기란 불가능하다.
평양의 만수대창작사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거대 예술 집단으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선전화(Poster)들은 체제의 정당성과 인민의 투쟁심을
고취하는 목적으로 제작된다.
1950년대의 <동무는 천리마를 탔는가?>(곽흥모)와 같은 작품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직관적이고 강렬한 구도로 전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미술에서 읽어내고 싶은 것은
그 이념의 외피 속에 감춰진 ‘사람의 손길’이다.
수만 명의 화가가 동원되어 그리는 거대한 ‘집채화’부터,
보석 가루를 갈아 붙여 영롱한 빛을 내는 ‘보석화’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쏟아부은 노동의 밀도는 경이로울 정도다.
그것은 때로 체제에 대한 충성심일 수도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예술가로서 자신이 마주한 세계를
가장 완벽하게 재현해 내려는 창작의 본능에 가깝다.
분단은 우리의 언어뿐 아니라 붓의 궤적마저 갈라놓았다.
남한의 미술이 추상과 개념의 바다를 유영하며 개인의 내면을 탐구할 때,
북한의 미술은 구상과 사실주의의 육지 위에서 민족의 기상과 집단의 의지를 형상화했다.
비록 그 목적지는 다를지라도,
붓끝에 맺힌 시대의 숨결만큼은 한 줄기 전통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북한 미술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편견의 장막을 걷어내고,
그 정교한 필치 속에 담긴 예술가들의 진심과 민족적 정서를 발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끊어진 우리 미술사의 허리가 다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붓은 때로 칼보다 강하고, 정치는 가두지 못하는 예술의 울림은
언젠가 그 견고한 장벽을 먼저 넘나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삼지연 관현악단 서울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