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A.R. Penck(1939–2017)의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은
종종 아이가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팔다리를 사방으로 뻗은 막대 인간, 화살표, 눈알, 뱀, 십자가 같은 원시적 기호들이
흰 바탕이나 강렬한 원색 위에 성기게 흩어져 있다.
그런데 잠시 더 들여다보면,
이 단순함이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어른이 되지 못한 그림이 아니라,
어른의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곳까지 밀고 들어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벗겨낸 그림이다.
본명은 랄프 빙클러. 1939년 드레스덴에서 태어난 그는 전쟁의 폭격 속에서 유년을 보내고,
동독 미술 아카데미에 거듭 입학을 거부당하며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다.
동독 국가보안부가 그의 작품을 압수하기 시작하자,
그는 고생물학자 알브레히트 펜크의 이름에서 따온 가명 A.R. Penck를 채택해 신분을 가렸다.
위험을 피하기 위한 익명, 그리고 검열을 피하기 위한 그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틀 밖으로 나가면 곧 체제 전복으로 간주되던 환경에서,
그는 누구나 해독할 수 있지만 누구도 쉽게 탄압할 수 없는 보편적 시각 언어를 만들어내려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Standart'다.
Standart 연작 속의 막대 인간들은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다.
팔을 벌린 채 달려가거나, 서로를 향해 창을 겨누거나,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들 사이에 갇혀 있다.
이 인물들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다.
개인이 아닌 인류 자체, 혹은 체제 앞에 선 개인의 보편적 조건이다.
개인의 자율성과 취약성을 동시에 상징하는 이 추상화된 인물 형상은
펜크가 평생 반복한 핵심 모티프였다.
펜크는 그 형상을 통해 정치적 억압, 동서 분단,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을 이야기했다.
거창한 서술 없이, 선 몇 개로.
1980년 서독으로 추방되듯 망명한 펜크는 바젤리츠, 키퍼, 이멘도르프와 함께
신표현주의의 물결에 합류하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동료들과 달리 재현의 욕망보다 기호의 논리에 충실했다.
철학, 자연과학, 사이버네틱스, 시스템 이론, 과학소설을 아우르는 방대한 지적 관심이
그의 작업 배경에 깔려 있었고,
그것은 막대 인간들의 단순함 아래 켜켜이 쌓인 밀도로 화면 속에 잠재해 있다.
그는 또한 재즈 드러머이기도 했다.
프리 재즈의 즉흥성과 충돌하는 에너지는 그의 그림 전체에 리듬으로 배어들어 있다.
붓질은 연주처럼 빠르고 과감하며, 기호들은 악보 위의 음표처럼 화면 위에 배치된다.
보는 것인지 듣는 것인지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이 있다.
펜크의 그림은 우리에게 묻는다.
언어가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벽이 존재한다면, 그 벽을 넘어 전달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훨씬 전,
그는 그림으로 이미 그 장벽에 금을 긋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