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오르는 소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캔버스 앞에 서면 잠시 숨이 멈춘다.

광활한 하늘, 그리고 그 한가운데 유유히 떠 있는 소 한 마리.

블레이크 휘태커(Blake Whitaker)의 그림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이 오히려 깊은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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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태커는 미국 워싱턴 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CalArts 대학원에서

실험 애니메이션으로 MFA를 취득한 작가다.

로스앤젤레스의 스튜디오에서 회화와 혼합 미디어를 오가며 작업해 온

그의 대표 시리즈는 "Ascending Cows", 즉 '하늘로 올라가는 소들'이다.

Calm Evening On The River, Desert Cloud, Waterfall in The Mountain

같은 작품들에서 소는 어김없이 하늘에 떠 있다.

풀밭 위가 아니라, 구름 사이에.

처음에는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오래 바라볼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Cap 2026-02-22 05-57-24.jpg Ascending Cow 14, 2021


소라는 존재는 흥미롭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도록 인간 곁에서 땅을 일구고 삶을 떠받쳐 온 동물이지만,

회화의 주인공으로는 거의 선택받지 못했다. 위엄 있는 말도 아니고,

낭만적인 사슴도 아닌, 그저 육중하고 느린 소.

휘태커는 바로 그 소를 하늘 한가운데 올려놓는다.


Cap 2026-02-22 06-00-40.jpg New Ascending Cow painting


이 선택은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일종의 철학처럼 보인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처럼, 현실의 문법을 비틀어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중력에 묶인 가장 무거운 존재를 가장 가벼운 곳에 놓음으로써,

보는 사람도 덩달아 가벼워지는 기묘한 경험.

그리고 소는 하늘에 떠 있어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원래 거기 있었던 것처럼 존재한다.

그 태연함이 오히려 가장 큰 위로가 된다.

Cap 2026-02-22 06-02-35.jpg Ascending Cow XI


그의 색채는 과장이 없다.

흙빛, 올리브색, 은은한 구름의 회색. 절제된 팔레트 위에

빛이 내려앉으면 그림은 한 편의 시가 된다.

특별한 날이 아닌, 그냥 그런 날의 오후.

누구나 기억하지만 아무도 기록하지 않는 그 평범한 순간들.


휘태커의 그림 앞에서 나는 자꾸만 느려진다.

서두를 것도, 증명할 것도 없이 그저 하늘에 떠 있는 소처럼.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존재가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무게를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지도 모른다.


11.jpg Ascending Cows



https://youtu.be/Ed2shGRJ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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